환경부, 20일 초안 발표...EU와 달리 2050년까지 고준위방폐장 부지확정 없어
EU서 인정하지 않을 경우 윤 정부 30%로 늘린 원전 RE100 적용 못받아
에너지전환포럼 "원전 확대 위한 명분 쌓기 지원제도 불과" 지적도

[산경e뉴스] 원전을 K-택소노미(Taxonomy)에 포함시켜 향후 에너지안보, 탄소중립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고 밝힌 윤석열 정부의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 윤곽이 나왔다.

그러나 예상대로 K-택소노미는 국제사회에 대응할 만한 내용을 갖추지 못했다. 유럽연합(EU)의 그린 택소노미에 부합하지 못하는 기준을 제시했다.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의 경우 유럽은 "2050년까지 고준위방사성폐기물(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 가동을 위한 문서화된 세부계획 +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보유"로 규정한 반면 이번에 발표한 윤 정부 K-택소노미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의 안전한 저장과 처분을 위한 문서화된 세부계획이 존재하며 계획 실행을 담보할 수 있는 법률제정+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시설 보유"로 규정했다. 

유럽연합 의회 의원들이 7월 6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원전과 가스를 택소노미에 포함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유럽연합 의회 의원들이 7월 6일(현지시간)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원전과 가스를 택소노미에 포함할지 여부를 결정하는 투표에 참여하고 있다. (사진=AFP연합뉴스)

이 얘기는 2050년까지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 장소 및 가동계획이 2050년 이전에 완성되는 조건을 전제로 원전을 택소노미에 포함시킨 것이다. 

유럽은 이 조건을 규정했지만 K-택소노미는 문장이 길어 자칫 무슨 말인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2050년까지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 세부계획과 실행법을 정부가 준비하면 된다는 것으로 사실상 2050년까지 방폐장 부지 확정에 대한 문제는 거론하지 않았다. 

유럽은 2050년까지 방폐장 부지 선정을 완료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원전을 그린에너지로 받아들였고 이때 원전에서 생산한 전력은 RE100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20일 발표한 K-택소노미 규정으로는 유럽 기준을 따라가지 못하고 결국 한국의 원전에서 생산한 전기는 RE100에 포함되지 않는다. 

K-텍소노미 안은 사용후핵연료 처분시설 부지 및 건설의 시점을 제시하지 못한 채 제2차 고준위방폐물 관리 기본계획(2차 고준위방폐물 기본계획)을 법제화할 경우 이를 방폐물 처분의 세부계획으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2차 고준위방폐물 기본계획 역시 부지확보 및 건설에 37년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기술되어 있을 뿐 언제, 어떤 부지에서 추진할지에 대한 규정이 없는 행정절차 및 공학적 전망일 뿐이다.

이는 2050년 이전까지 고준위방폐물(사용후핵연료) 처분부지를 확보하고 건설, 운영할 세부계획을 조건으로 제시한 EU의 녹색분류체계와 대비된다.

EU-택소노미와 K-택소노미 인정기준 비교.
EU-택소노미와 K-택소노미 인정기준 비교.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결국 독자적인 엄격한 규정이 필요한 대목에서 환경부가 감당해야 할 책임을 원자력 법률의 제정으로 떠넘긴 것이다. 이는 앞으로도 고준위방폐물 처리나 처분에 대한 명확한 계획 없이 건설과 운영에만 관심을 둠으로써 미래세대에 필요 비용을 전가하는 무책임한 처사"라고 지적했다. 

또다른 핵심내용인 ▲사고저항성핵연료의 경우 유럽은 2025년부터 적용한다고 명확하게 제시했지만 K-택소노미는 신규건설 원전은 사고저항성핵연료를 적용하고 계속운전의 경우 2031년부터 사고저항성핵연료를 적용한다고 규정했다. 

EU의 사고저항성 핵연료 2025년 적용은 원자력 산업계의 탄원에 따라 2.5년간을 유예해준 항목으로 그 이전에 건설허가를 받는 신규원전은 이 조건에서 면제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유럽에서 2025년까지 새로이 건설허가를 받을 만한 신규원전 사업이 없어 사실상 향후 모든 신규원전은 사고저항성 핵연료를 적용해야 할 전망이다. 

현재 체코가 추진중인 신규 원전 1기가 2025년 이전에 허가를 받을 수도 있는데 그래봐야 1기에 불과하다. 폴란드가 추진하는 원전은 2025년 이전에 허가를 받기 어려울 전망이다. 

따라서 윤 정부가 원전 수출을 지상목표로 설정하고 한국수력원자력과 추진중인 동유럽 원전 수주는 결국 한국형 원자로에 사고저항성 핵연료를 탑재해야 하는 경우의 수가 발생한 것이다. 

이는 원전 수주에 따른 경제성 평가에서 불리한 상황이 됨을 암시하는 것이다. 정부 발표대로 큰 돈을 벌기 어렵다는 반증이다.     

유럽에서 원전 발전사업자는 실제 건설 이전에 건설계획 승인, 최종설계사양, 예비안전성분석 등 건설허가에 총 5년 가량이 소요된다. 우리나라처럼 정부 허가도 나기 전에 발전사업자가 부지공사를 먼저 하는 비상식적인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최근 사례인 영국 사이즈웰-C(Sizewll C) 원전사업은 발전사업자(EDF)가 지난 2020년 5월에 신청한 건설계획을 영국 기업에너지산업전략부로부터 승인받는데 2년 2개월이 걸렸고 이후에도 최종설계사양, 예비안전성분석 등 안전규제기관의 심사에 2~3년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K-택소노미에서 사고저항성 핵연료 적용 시점을 EU보다 6년 뒤인 2031년으로 지연한 것은 정부가 추진중인 신규원전(신한울 3,4)과 수명연장을 추진중인 노후원전 10기 때문이다. 2031년 안에 허가를 받으면 이들 원전은 사고저항성 핵연료를 사용하지 않아도 된다. 

윤석열 정부의 방침대로라면 신규원전 및 노후원전 수명연장에 대한 심사 및 허가는 2031년 이전인 현 정권 임기 내에 모두 진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택소노미(녹색분류체계)의 다른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국내 원전들은 향후 9년간 사고저항성 핵연료 조건에 대한 유예를 받으면서 녹색분류체계에 포함돼 이 조건은 사실상 유명무실한 기준으로 남게 된다. 

이러한 조처는 사고저항성 핵연료를 사용하도록 함으로써 원전 안전을 강화하려는 의도에 부합하지 않는 처사이다.

이번 K-택소노미에 원전을 포한시키면서 연구개발 부문을 녹색에 포하시켜 환경부 예산지원이 가능하도록 했다. 

원자력 R&D는 이전 정부의 경우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로 하고 산업통상자원부가 일부 지원하는 형식이었다. 

그러나 친원전을 주창한 윤 정부 들어 원자력 R&D는 과기부, 산업부 외에 중소벤처기업부, 환경부까지 원전 예산지원이 가능해졌다.   

K-택소노미 원전 반영표.
K-택소노미 원전 반영표.

에너지전환포럼은 "EU는 사용후핵연료를 줄일 수 있는 기술에 국한해 원자력 연구개발사업을 지원한다는 규정을 통해 지속가능성에 대한 기여도에 따라 녹색금융의 지원을 제한하는 효과가 있다"고 지적하고 "국내의 경우 모든 원자력연구개발 사업 전체를 녹색금융으로 지원한다는 측면에서 애초 녹색분류체계의 취지가 무색하게 또 다른 원자력 지원제도로 전락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 8월 30일 발표한 윤 정부 첫 에너지계획인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는 2036년 발전비중에서 원전(32.8%)을 재생에너지(21.5%)보다 많도록 재조정했다.  

문재인 전 정부에서는 발전비중에서 재생에너지(20.8%)가 원전(25.0%)에 근접하도록 설계했다. 

2050년 K-택소노미 원전 부문이 유럽기준을 통과하지 못할 경우 무역 및 수출에 심각한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

바로 RE100 규정 때문이다. 

2030NDC, 2050탄소중립 시나리오에서 윤 정부가 발표한 K-택소노미 원전 규정이 유럽기준에 통과하지 못할 경우 한국은 향후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 

유럽 등 주요 선진국 수출시 RE100 제품이 아닌 것은 탄소중립 국경세를 내야하기 때문이다. 

윤 정부는 전임 문재인 정부가 20% 이하로 낮춰놓은 원전을 전체 전력의 30%로 늘려 잡아 놓았는데 이 전원이 RE100으로 인정받지 못하면 수출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환경부는원자력발전(원전)을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포함하기 위해 ▲원자력 핵심기술 연구‧개발‧실증 ▲원전 신규건설 ▲원전 계속운전 등 3개로 구성된 원전 경제활동 부분에 대한 초안을 20일 공개했다. 

원자력 연구개발은 녹색부문에, 원전 신규건설 및 계속운전은 전환부문에 포함시켰다. 

사고저항성핵연료 적용 및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안전한 저장과 처분을 위한 세부계획·법률제정 조건을 달성해야 녹색에 해당된다. 

윤 정부는 원전의 안전성‧환경성을 향상시켜 2050 탄소중립 달성에 기여하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녹색부문’과 ‘전환부문’으로 구분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는 ▲온실가스 감축 ▲기후변화 적응 ▲물의 지속가능한 보전 ▲자원순환 ▲오염방지 및 관리 ▲생물다양성 보전 등 6대 환경목표 달성에 기여하는 경제활동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 30일 69개 경제활동으로 구성된 ‘녹색분류체계 지침서(가이드라인)’를 발표한 바 있다.
   
69개 경제활동 중에서 재생에너지 등 탄소중립 및 환경개선에 필수적인 64개 경제활동은 ‘녹색부문’에,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등 탄소중립으로 전환하기 위한 5개 경제활동은 ‘전환부문’에 각각 포함됐다.

‘녹색분류체계 지침서’ 발표 당시 원전의 경우 유럽연합(EU) 등 국제동향과 국내 여건을 고려하여 최종 포함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최근 2050 탄소중립 달성을 위해 국내외에서 원전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 등을 계기로 각국의 에너지 안보에 대한 위기의식이 커졌다. 

유럽연합은 원전이 기후변화와 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한 중요한 전력원이라는 측면을 반영하여 지난 7월 11일 EU-택소노미(유럽연합 녹색분류체계 )’에 원전을 포함시켰다.  

이러한 국제 기조를 반영해 정부는 7월 5일 ‘새정부 에너지 정책방향’을 수립했으며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와 ‘2050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해서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조화로운 활용이 필요함을 강조했다.

이에 따라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도 원전 포함에 대한 검토 필요성이 커졌다. 

3개의 원전 경제활동으로 구성된 이번 초안은 ‘유럽연합 녹색분류체계(EU Taxonomy)’를 참고하되 국내여건을 감안하기 위해 학계, 전문가, 시민사회, 산업계 등으로 구성된 세부 협의체, 관계부처 등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마련했다.

‘원자력 핵심기술 연구‧개발‧실증’은 녹색부문에, ‘원전 신규건설’과 ‘원전 계속운전’은 전환부문에 포함됐다.

‘원자력 핵심기술 연구‧개발‧실증’은 원전의 안전성 향상과 국가 원자력 기술경쟁력 확보를 위해 중장기적 연구‧개발이 필요한 핵심기술을 포함한다. 

소형모듈원자로(SMR), 차세대 원전, 핵융합과 같은 미래 원자력 기술의 확보는 물론, 사고저항성핵연료(ATF) 사용, 방사성폐기물관리 등 안전성 향상을 위한 기술을 반영했다.

‘원전 신규건설’과 ‘원전 계속운전’은 환경피해 방지와 안전성 확보를 조건으로 2045년까지 신규건설 허가 또는 계속운전 허가를 받은 설비를 대상으로 했다.

환경부는 이번 K-택소노미 초안 공개 이후 전문가, 시민사회, 산업계, 관계부처 등 각계각층의 의견을 추가로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오는 10월 6일 오후 2시 서울 양재 엘타워에서 대국민 공청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한국형 녹색분류체계에 원전 경제활동을 포함하여 원전의 안전성과 환경성을 높이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재생에너지와 원전의 조화로운 활용을 통해 2050 탄소중립 실현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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