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경e뉴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말로 '학생'을 뜻하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다. 1979년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을 때 무력으로 저항했던 세력으로 미국의 지원을 바탕으로 1989년 소련군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쫓아냈다. 

최용혁(한전 전북본부 전력관리처 부장)
최용혁(한전 전북본부 전력관리처 부장)

미국의 지원을 받은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 중 가장 강력한 세력으로 아이러니하게도 2021년에는 미국을 아프가니스탄에서 쫓아냈다.

마피아는 이탈리아 시칠리아 방언으로 원래 ‘아름다운’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탈리아와 프랑스 사이에 끼어 외세에 시달리던 시칠리아의 생존을 위해 싸우던 저항조직이었다. 

미국으로 이민 간 이탈리아인들이 앵글로 색슨계 주민들에게 차별을 당하자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자생적으로 변질됐고 지금은 모든 음성적인 이익집단을 지칭하는 부정적인 용어로 쓰인다.

영화 '갱스 오브 뉴욕'은 배고픔을 탈피하고자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미국 뉴욕으로 건너온 가난한 이탈리아계와 아일랜드계 이민자들의 투쟁적 삶을 다룬 영화다. 감상해보길 권한다.   

얼마 전 어느 보수 신문은 논설을 통해 ‘환경 탈레반’이라는 말을 만들어 냈다. 

최근 정부가 국제사회에 발표한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비난하면서 만들어낸 말이다. 

이 신문은 “국가가 환경 탈레반들의 놀이터가 돼서는 안 된다”는 강한 표현으로 이재명 정부 NDC를 비난했다. 산업계가 요구하는 탄소중립 수치보다 훨씬 높은 목표를 정부가 결정했다는 비아냥이다.  

반대로 진보적이라는 언론에서는 외부 인사 기고문 등을 통해 ‘원전 마피아’라는 말을 가끔 사용하는데 이는 진보-보수를 떠나 하나의 사회적 언어가 됐다.  

보수와 진보 두 진영은 에너지 문제를 놓고 서로를 탈레반과 마피아로 부르며 싸운다. 

우리나라 에너지 문제를 놓고 서로 상대를 극단주의자로 부르는 싸움터로 변했다. 

에너지 전환은 시대적 숙명이다. 양쪽 다 이를 인정한다. 

탄소를 줄이고 기후변화에 대응해야 한다는데는 뜻이 같은데 방법에 있어서 ‘탈레반’들은 급진적인 재생에너지 확대를 부르짖고 ‘마피아’들은 현실성 있는 대안으로 원자력 발전을 내세운다. 

둘 다 화석연료에 비해서 탄소배출을 거의 또는 상당히 줄이는 효과가 있는데 이렇게 싸운다. 

동해안 지역의 원전, 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대규모 전기를 수도권에 실어나를 500kV HVDC(초고압직류송전방식) 공사가 당초 예정일보다 10년 가량 지체된 가운데 최종 기착지인 하남시가 2024년 8월 21일 동서울변전소 옥내화-증설사업에 대해 인허가 불허를 통보한채 머물러 있어 2026년 완공목표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사진은 2023년 11월 동해안 HVDC 송전망 건설이 진행중인 양주변전소 공사 현장. (사진=한전 제공)
동해안 지역의 원전, 화력발전소에서 생산한 대규모 전기를 수도권에 실어나를 500kV HVDC(초고압직류송전방식) 공사가 당초 예정일보다 10년 가량 지체된 가운데 최종 기착지인 하남시가 2024년 8월 21일 동서울변전소 옥내화-증설사업에 대해 인허가 불허를 통보한채 머물러 있어 2026년 완공목표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사진은 2023년 11월 동해안 HVDC 송전망 건설이 진행중인 양주변전소 공사 현장. (사진=한전 제공)

남한산성에 갇혀 주전론과 주화론으로 피 터지던 병자호란 시대로 돌아간 것 같다.

인류에 있어서 이번 에너지 전환은 세 번째이다. 

첫 번째는 ‘불의 사용’으로 다른 동물들이 불을 피해 도망칠 때 인간은 불을 움켜쥐고 자연을 정복했다. 

석탄을 태워서 증기를 압축한 외연기관의 발명은 두 번째 에너지 전환이었다. 

에너지를 멀리 보내는 획기적인 방법인 전기를 발견한 것이 세 번째 에너지 혁명이었다. 

지금 우리가 말하는 에너지 전환은 모든 에너지를 전기화(電氣化)하는, 그것도 청정에너지로 생산하는 전기를 사용하자는 또 하나의 ‘에너지 혁명’이다.

국토가 좁고 인구밀도가 높지만, 햇빛과 바람이 부족한 우리에게는 청정에너지로의 전환이 어려운 과제다. 

그나마 햇빛과 바람 자원은 호남을 비롯한 남쪽 지방에 몰려 있다. 

전남은 우리나라 최대의 태양광 자원을 가진 지역이며 이미 33GW 규모의 태양광 설비가 건설됐거나 세워질 예정이다. 

전남이 자체적으로 소비할 전기는 7GW가 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의 70%가 집중된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야 한다. 

용인에 계획된 반도체 클러스트에는 10GW 이상의 전기가 필요하지만 인근에 세워질 LNG 발전소 등을 통해 공급이 가능한 전기는 3GW를 넘지 못한다. 

나머지는 호남에서 올라와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근무하는 전북지방은 지금 난리가 났다. 전북지역 8개 지차체와 주민들은 한전이 계획하고 있는 고압 송전선로 건설 반대를 위해 뭉쳤다. 

이들은 남쪽에서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끌어가기 위해 건설되는 송전탑으로 인한 피해가 지역 주민에게 전가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송전탑 건설 반대를 위한 주민 대책위’는 “수도권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싼값에 필요한 전기를 쓰지만 자연경관 훼손과 전자파 우려, 환경파괴, 지가 하락 등 모든 피해는 송전선로가 지나는 지역 주민에게 떠넘겨진다”며 전북을 수도권의 식민지라고 부른다. 

전북 도내 13개 시·군에서 총 21개 노선, 627km나 되는 초고압 송전선로와 대형 변전소, 개폐소, 공동 접속시설이 예정돼 있다. 

송전선로가 지나는 마을 주민들은 제대로 된 설명을 들은 적이 없고 갑자기 열린 설명회에서 ‘최적 경과 대역’이라는 지도 한 장이 공개되었을 뿐 입지선정위원회는 불법과 꼼수로 운영됐다고 주장한다.

주민들의 요구는 얼핏 들으면 막무가내식 반대로 들리지만 가만히 따져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이들 주장의 핵심은 첫 계획 단계에서부터 주민들의 참여를 원하는 것이다. 

과거 밀양사태 동서울 변전소 사태 등에서 보듯, 송전설비 건설에서 지자체와 주민들의 반대는 송변전 설비 건설 계획을 상당히 지체하게 만든다. 

이를 두려워하는 사업주체는 최대한 빨리 사업을 추진하고 싶어지고 이 과정에서 주민들의 의견 표현이나 참여 기회는 제한될 수밖에 없다. 

정부와 한전이 당당하게 주민들에게 정보를 공개하고 주민들은 무조건 반대나 무리한 요구보다 공청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정보 공개를 요구하고 정당한 보상을 요구해야 한다.

송전선로 건설을 둘러싼 갈등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에너지 전환과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런 갈등은 여러 곳에서 생기고 있다. 

합리적인 해결책은 정보공개와 주민 참여 밖에는 없다. 

에너지 전환 모범국으로 평가받는 독일이 좋은 사례다. 

독일 북부의 풍력단지에서 남부 공업지대를 연결하는 쥐트링크 프로젝트가 대표적이다. 

민간 송전기업인 테넷은 연방 및 지방정부와 함께 사업 계획 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하고 이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이 과정이 쉽지는 않다. 

때로는 계획보다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하지만 빠른 사업 추진을 위해서 비밀주의로 사업을 추진하는 것보다 결과적으로 시간과 비용이 줄어든다.

독일이 반드시 우리의 모범 사례가 될 수는 없겠지만, 우리도 송전 설비 건설에서 속도전 보다는 조금 느리더라도 함께 가는 방향을 택해야 할 것이다. 

NDC를 늦추더라도 현실 가능한 목표를 세워야 한다. 

의사결정과정의 투명성을 보장하고 주민 참여를 적극 유도하는 한편, 햇빛 연금과 같은 주민 참여 공동사업 방식을 송변전설비 건설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선하지 보상이나 주민 공동사업 지원과 같은 소극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주민들이 송전탑과 변전소 주변에서 공동으로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을 함께 조성해 나가는 것이다. 

이를 통해 주민들은 송변전 설비에 대한 오해를 풀 수 있고 동시에 일정한 수입원을 창출하게 되면 모두에게 이롭지 않을까.

대한민국에도 탈레반과 마피아가 있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이런 양극단 세력이 주도권을 쥐게 되면 결국 파국이 온다. 

공산 전체주의와 극우 파시즘 모두가 해롭기는 마찬가지다. 

자유민주주의는 극단을 피하고 중도를 택하며 모두의 뜻을 모으는 힘든 과정에서 성공한다. 

에너지 전환 역시 이런 중도의 길을 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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