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섭 편집국장

[산경e뉴스] 산업통상자원부가 혼란스럽다. 전 정부 시절 소위 잘 나가던 고위직 공무원들이 짐을 싸고 나간데다 타부처 출신 공무원이 산업부에 입성하며 불협화음이 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만섭 편집국장
이만섭 편집국장

지난 9월 20일 취임한 방문규 산업부 장관이 일주일만에 단행한 인사에서 이같은 파열음은 예고됐다. 

방 장관은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기재부 차관을 역임한 정부예산통이다.  

기재부 출신이 산업부 장관에 영전한 것은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있었다. 주형환 전 장관이다. 

당시 그는 산업부 정통관료의 의견을 무시했고 그의 지시에 반발해 정승일 당시 에너지자원실장이 옷을 벗은 일화는 유명하다. 정 실장은 다음 정부에서 가스공사 사장, 산업부 차관, 한전 사장을 역임했다. 

윤 정부 두번째 산업부 장관으로 취임한 방 장관은 지난 9월 27일 10명의 실장급 간부 중 6명을 교체하는 초강수를 두었다. 

행정고시 37~38회인 주영준 산업정책실장과 황수성 산업기반실장, 정대진 통상차관보, 문동민 무역위원회 상임위원 등 총 4명이 사표를 제출했다.

이들은 평균 50대 중후반으로 대부분 30년 공직생활을 한 사람들이다. 

윤석열 정부 첫 산업부 장관이던 이창양 장관은 지난해 5월 취임하며 대대적인 보직이동을 단행했다. 

지난해 단행한 산업부 실국장 인사의 특징은 산업과 에너지를 확 바꾼 것이었다. 에너지를 쭉 담당해온 실국장을 산업쪽으로 배치하고 산업을 관할해온 인사는 에너지 분야로 배치했다.

방문규 장관 취임 후 이뤄진 인사로 산업부가 혼란스럽다는 전언이다.
방문규 장관 취임 후 이뤄진 인사로 산업부가 혼란스럽다는 전언이다.

전 정부에서 추진해 온 산업-에너지 정책 노하우를 잘 알고 있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단 뜻으로도 읽힌 인사였다.  

그 다음에 나온 일이 지난 정부 시절 재생에너지, 특히 태양광사업을 문제삼고 전 정부 탈원전 정책을 담당한 공무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자리를 바꿨다고 일을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다분히 정략적이라는 평가가 나온 이유다. 

당시 에너지 전문가들은 산업부 인사내용을 보고 전 정부 에너지전환 정책은 물거품이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윤 정부는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추진한 원전 중심의 에너지 효율 정책을 이어받아 새판을 짜기 시작했고 전세계 추세인 재생에너지 중심의 에너지전환 정책은 사실상 버린 카드가 됐다. 

물론 산업부는 지금도 그렇지 않다고 항변하고 있지만 기자가 보기에는 재생에너지라는 '노아의 방주'에 승선하지 않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윤 정부 산업부 인사에서 눈여겨 볼 인물은 이번에 옷을 벗은 주영준 전 실장이다. 

그는 전임 문재인 정부 시절 3년여에 걸쳐 에너지정책관, 에너지정책실장으로 승진하며 일관된 에너지전환 정책을 이끌어온 대표적 인물이다. 

워낙 성품이 조용하고 겸손해 관가에서는 칭찬이 끊이지 않던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결국 옷을 벗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새 정부에서 행시 후배 기수를 전면에 배치하니까 더 이상 버티지를 못하는 것이다. 이런 일은 그동안 관가에서는 관례상 지켜져 온 불문율이다. 

문재인 전 정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으로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선을 통해 집권하다 보니 코드가 맞지 않던 1급 관료를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이동한 바는 있지만 이렇게 비인간적인 인사를 단행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만약 산업부 출신 관료가 장관이었다면 어떤 일이 재연됐을까. 

정부 부처 가운데 가장 많은 산하기관을 두고 있는 실무형 부처인 산업부는 기관장으로 갈 자리도 충분한데 이들 4명의 실장들은 갈 곳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기에 그렇다.     

기재부 출신 관료들은 타 부처에 비해 냉정하고 인간미가 없다는 말을 많이들 한다. 예산을 만지는 기재부에서 20년 이상 관료생활을 하면 그렇게 된다고들 한다.    

여기에 정권의 힘이 더해지면 상식과 관용의 정치는 실종된다. 

현재 윤석열 정부에 실망하는 중도층이 많아지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전 정부 주역이던 민주당에 실망하고 이런저런 판단을 하지 못하다 지난해 윤석열 대선 후보의 정의를 외치는 소리에 "검찰총장 출신이니까 잘 하겠지"라고 믿었던 이들이 요즘은 "어 이거 뭐지"하며 반신반의하며 후회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는 말이 자주 들린다. 

이런 상황에서 에너지정책을 총괄해온 산업부 엘리트들의 최근 아픈 상황을 보며 국가장래가 걱정된다.         

퇴계 이황 선생이 벼슬을 사양하고 고향에 돌아와 제자들을 양성하며 강조한 '여민동락(與民同樂)'이 떠오른다. 

백성들과 동고동락(同苦同樂)하면서 그들의 삶을 개선하려는 정치 지도자의 자세를 비유한 말이다.

전 정부에서 탈원전 에너지전환 정책을 추진하며 태양광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관련 중소기업들이 번창하는 듯했다. 전 정부에서 대규모 플랜트 중심의 원전, 대형국책 사업을 펼쳤던 대기업들은 힘들었다.  

불과 4년여 만에 이같은 여민동락은 끝을 맺었다. 

윤 정부는 에너지-산업 정책을 대폭 바꾸더라도 전 정부에서 추진해온 정책흐름을 최소한 이해는 하려는 제스춰를 취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산업부 1급 관료 '찌질이 인사'를 보며 기대감이 사라졌다.    

직언을 하는 사람도, 직언을 받아줄 의지도 없다면 이 나라는 현재 여민동락은 커녕 간신들의 권모술수만 판치는 혼돈의 시대가 되고 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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