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혁 한전 전력기금사업단 부장

[산경e뉴스] 1998년 4월1일, 미국 캘리포니아는 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인 전력산업 자유화 조치의 시행에 돌입했다.

최용혁 한전 전력기금사업단 부장
최용혁 한전 전력기금사업단 부장

1996년 주 의회를 통과했던 법안(AB 1980)의 핵심은 당시까지 캘리포니아의 지역별로 발전부터 판매까지 분할 독점을 하던 퍼시픽가스&일렉트릭(PG&E), 서던캘리포니아에디슨(SCE), 그리고 샌디에고가스&일렉트릭(SDGE) 3대 전력회사들에게 발전설비의 50% 이상을 매각하게 함으로써 발전부문을 자유화하고 모든 전력거래는 전력시장(CalPX)을 통해 하겠다는 것이었다.

사막기후의 특징 때문에 환경규제가 미국에서 제일 엄격했고 이에 따라 전기요금 역시 미국 내 최고 수준이었던 캘리포니아는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신규 발전소 건설에 이들 전력회사들의 재정부담이 크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또 영국을 시작으로 불기 시작한 전력산업 구조개편의 흐름에 발맞춰 자유로운 전력시장 개설을 통해 발전전문회사들의 투자를 촉진함으로써 보다 친환경적인 발전소 건설을 촉진하고 발전부문 경쟁으로 전기요금도 낮추겠다는 등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생각이었다.

주 전체 전력공급의 80%를 담당하던 3대 민간 전력회사의 수익을 주정부가 보장하던 “규제독점” 체제의 비싼 전기요금을 부담하던 캘리포니아 주민들은 자유화를 두 손 들고 환영했다. 이 조치는 처음에는 매우 성공적으로 보였다. 

3대 전력회사는 독과점 방지를 위해 제시됐던 “최소 50% 이상 발전설비 매각”이라는 목표를 훨씬 넘어서 거의 대부분의 발전소를 매각할 수 있었다.

발전시장이 뭔가 돈이 된다는 시그널에 시장이 반영했던 것으로 보였다. 왜 많은 투자자들이 캘리포니아의 노후 발전소들을 그렇게 사들였는지 그 이유를 3년 만에 모두가 알게 됐다.

주 정부는 도매요금은 자유화했지만 소매요금이 너무 많이 떨어짐으로써 기존 전력회사들의 수익이 급감할 것을 우려해서 샌디에고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소매요금을 도매가격에 연동하지 않도록 고정시켰다.

귀찮은 발전부문을 떼어낸 기존 전력회사들에게는 이는 매우 반가운 결정이었다.

규제독점 시스템이 사라지고 발전부문에서 경쟁이 벌어지면서 처음 2년간 전기도매요금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2000년 말 평년보다 추웠던 겨울이 찾아오면서 상황은 급변했다. 그리고 전기의 물리적 특성, 즉 아무리 가격이 올라도 소비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경제학 개념으로 수요탄력성이 0인 전기 자체의 성질이 모든 것을 무너뜨렸다. 

난방수요 급증으로 공급이 부족해지자 도매가격은 뛰기 시작했고 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엔론, AES, 서던파워 등 발전전문회사들은 이 틈을 타서 고의적으로 발전소를 하나씩 세우기 시작했다. 그 뒤의 사실은 우리가 다 아는 내용이다.

치솟는 도매시장 가격을 소매요금에 반영 못한 못한 전력회사들은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고 PG&E는 파산했다.

전력시장이 붕괴했고 CalPX는 문을 닫았다. 주 정부가 막대한 재정을 퍼부으며 발전소를 다시 인수했고 전력도매시장을 교란했던 엔론의 경영진들은 아직도 감옥에 있다.

엔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최근에 벌어진 미국을 겨냥한 OPEC의 석유 감산 등 2년째 우리나라의 전력도매가격은 판매가격 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고 더 올라갈 수도 있어 보인다. 한전 입장에서는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하지만 경제 사정 등을 감안하면 전기요금 인상 역시 쉽지 않다. 정부가 대국민 소통을 앞세워 요금 인상 시그널을 주고 있지만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묘책은 없는지 여러모로 고민중일 것이다. 

전기화가 만능인 것처럼 외치지만 우리가 전기를 너무 쉽고 싸게 사용해온 것은 아닌지 되새겨볼 때다. 전기가격이 적정수준 대로 올라야 전기의 고마움과 아끼는 마음이 자리잡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에너지공기업의 방만경영을 지적하는 일보다 근본적인 에너지가격 정상화를 통한 공정한 공기업 경영평가가 수반된다면 그때쯤 두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을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시작될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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