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혁 한전 전력기금사업단 총무부장

[산경e뉴스] 불만의 겨울(The Winter of Discontent)이라는 혼란의 사건이 1970년대 말 영국에서 벌어졌다. 

최용혁 한전 전력기금사업단 총무부장
최용혁 한전 전력기금사업단 총무부장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로 상징되던 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 복구를 기반으로 하던 번영의 시대를 끝내던 암울한 기억이었다. 

1978년, 영국의 집권 노동당은 두 차례 오일쇼크를 거치면서 밀어닥친 재정 적자와 인플레이션을 더는 견디지 못하고 과감한 임금 삭감과 복지 축소를 시행했고, 이에 대항한 노동조합의 총파업이 영국 사회를 휩쓸었다. 

그해 겨울, 마침 16년 만의 강추위가 몰려 왔고 영국 사회는 그야말로 혼돈의 속으로 빠져들었다. 

노동자들을 비롯한 시민들의 고통은 한계로 치달았다. 

그 결과 1979년 총선에서 노동당의 대처가 수상으로 당선됐고 소위 “영국병” 치료를 앞세운 신자유주의 영국을 거쳐 전 세계로 휘몰아쳤다. 

전력산업에도 신자유주의 바람이 불었고 이는 선진국에서는 최초로 전력산업을 수직, 수평 분할해서 민영화로 가는 전력산업구조개편으로 이어졌다. 

이제 모두 역사 속의 이야기로 남아 있지만, 이 시대의 경험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은 오늘날 우리나라의 전력산업 역시 이와 유사한 갈림길에 서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더는 이대로 내버려 두기 어려운 형편이다. 

작년 이후 치솟은 국제 에너지 가격은 세계적으로 전기요금을 급등시켰고 우리나라 역시 몇 차례 전기요금 인상을 단행했다. 

다행히도 아직 우리나라 전력산업은 한전을 중심으로 하는 공공체제에 속해 있으므로 외국과 같은 급격한 요금 인상은 피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부담을 혼자 떠안은 한전의 적자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한전의 부실을 계속 유지하면서 국민들의 보편적 전기사용권리를 보장하고 제조업의 부담을 경감시켜 주는가, 아니면 적절한 수준의 요금인상으로 한전의 재정부담을 감소시키는 한편, 이참에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던 에너지 가격 현실화를 통해 에너지 효율성을 높이는가의 갈림길에 서 있다.

시장의 기능을 강화해서 적절한 에너지 가격 현실화를 추진하면 급격한 가격 부담 때문에 경제와 국민 생활에 부담이 생기고, 반대로 지금과 같은 낮은 가격 수준을 유지하면 한전을 비롯한 에너지 공기업들의 부실화와 이로 인한 미래의 더 큰 경제적 부담을 쌓아 가는가를 놓고 정부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과 같은 고유가 시대가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기에 아주 적절한 기회라는 주장도 있다.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관계없이 재생에너지 시대는 우리 눈앞에 와있다. 

유럽이 주도하는 RE100 운동이 제도화되면 100% 재생에너지로 발전한 전기가 아닌 전기로 생산한 공산품은 유럽시장에 발을 붙일 수 없는 날이 도래할 것이다. 

화석에너지 가격이 급등한 이 시점이 역설적으로 에너지 전환의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봄의 소식이 조금씩 다가오는 3월은 곧 닥칠 여름철 전력사용량 증가에 대비해야 하는 때이기도 하다. 

전기요금을 올리면 누군가 힘들어지고, 그렇지 않는다면 다른 한쪽이 어려워지는, 어쩌면 모두가 불만일 수 있는 불만의 여름(The Summer of Discontent)이 우리 앞에 펼쳐질지도 모른다. 

모두의 지혜가 그리고 모두의 희생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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