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용혁 한전 전력기금사업단 부장

[산경e뉴스] 지금부터 20년 전, 2001년 4월 1일 한국전력공사의 발전부문이 6개의 회사로 분리됐다. 1961년 군사정부에 의해 당시 1개의 발전회사와 2개의 송배전회사를 하나로 묶어 한국전력주식회사가 출범한 이래 딱 40년 만에 우리나라의 전력회사가 발전, 원자력, 송배전으로 다시 갈라졌다.

최용혁 한전 전력기금사업단 부장
최용혁 한전 전력기금사업단 부장

발전분할이라고 이름 지어진 이때의 분할은 1999년부터 계획된 전력산업구조개편의 첫 번째 단계였다. 당시 정부는 발전분할 후 배전부문을 6개의 지역별 회사로 분리한 후 새로 출범한 전력거래소를 가운데 놓고 양방향 자유경쟁을 도입하려고 했다. 이는 1990년대 세계를 휩쓸던 전력산업의 자유화 물결을 그대로 받아들여 단일 독점전력회사의 비효율을 극복하고 늘어나는 전력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민간부문의 투자를 촉진하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결과였다. 영국, 미국, 캐나다, 호주 등 주로 영미권 국가들이 이런 전력산업 자유화를 과감하게 시작한 국가들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모든 전력거래를 거래소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설계했던 단일 의무적 시장의 선구자였던 영국의 잉글랜드, 미국의 캘리포니아, 호주의 빅토리아 등의 지역에서 민간 발전회사의 고의적인 발전량 감축, 부실한 전력거래 시스템에 의한 수급 불안정 등 예상치 못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엔론사태를 필두로 한 이런 비극적 결과로 2000년대 초반 이후 자유화를 도입했던 많은 나라들은 다시 규제시장으로 제도를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자유화 실패의 가장 큰 이유는 전기의 물리적 특성을 무시한 급진적 전력시장 설계에서 기인했다는 것이 공통된 평가이다. 생산과 소비가 실시간에 벌어지고 다른 재화나 서비스에 비해 대체재가 없어서 수요탄력성이 0에 가까운 등등의 이유가 급진적 전력자유화 실패의 주된 이유로 꼽히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발전부문의 경쟁체제가 막 출범하자마자 세계의 이런 실패 사례를 토대로 치열한 내부 논쟁이 벌어졌고, 한전의 전력노조와 정부는 합의를 통해 자유화의 두 번째 단계였던 배전부문 분할 문제를 노사정위원회에 위임했다. 노사정위원회는 산하의 공공부문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한 노사정 공동연구단의 연구 결과였던 배전분할 중단 결론을 정부에 건의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노사정위원회의 권고를 받아들이면서 배전분할은 2004년 6월 공식적으로 중단됐다. 이후 전력부문의 자유화를 비롯한 큰 변화는 모두에게 뜨거운 감자가 되어, 발전부문은 제한적인 경쟁체제이면서 송배전부문은 공기업 한전이 독점하는 어정쩡한 모습을 띄고 있다.

지난 20년 간의 발전분할에 대한 평가는 시각에 따라 다르다. 자유화 찬성측은 배전부문의 분리와 자유화가 없었기 때문에 성공적이지 못하다고 하고, 반대진영에서는 전력산업 자체가 경쟁이 어렵기 때문에 분할경쟁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주장한다. 사실 앞에서 언급한 잉글랜드, 캘리포니아, 온타리오, 빅토리아는 공통적으로 단일 전력망을 인위적으로 분할해 경쟁을 도입했지만 실패로 끝난 지역들이다. 반면 미동부 PJM, 북유럽의 노드풀 등은 여러 지역이나 국가의 전력망을 한데 묶어서 자연스럽게 경쟁시장을 도입해서 성공한 사례들이다.

지금 이 시점에서 우리는 찬반 양쪽의 시각에서 벗어나 냉정하게 현실을 보자. 오늘날 전력산업 앞에 놓인 도전은 과거 20년 전과 같은 독점과 자유경쟁의 문제가 아니다.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에너지전환에는 에너지의 전기화가 핵심이다. 탈석탄, 탈원전, 재생에너지 확대와 같이 필연적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에서 과연 현재의 불완전한 전력산업 구조를 어떻게 할 것인가를 놓고 새로운 시각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시장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이 기회에 한전 소매부문과 계통부문을 분리해서 자유화를 확대해야 다양한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촉진될 것이며 공정한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전력산업의 공적 기능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대규모 투자를 위해서는 공기업 한전이 적극적으로 신재생을 포함한 에너지 신사업 투자를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특히 기존의 발전 5개사 체제를 재편해서 탈석탄에서 신재생으로 전환할 때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고용불안정과 지역 갈등 등의 문제를 공기업이 앞장서서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기후변화 대응이라는 전 지구적 난제를 풀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에너지전환, 신재생 3020, 2050 탄소중립, RE100 대응 등 어려운 숙제들을 하나씩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에너지산업의 백년대계를 세워야 하고 기존의 진영논리에서 탈피하는 한편 전문가집단과 관료들의 폐쇄적인 의사결정 구조에서도 벗어나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회적 대화의 속에서 숙의를 거치는 민주적 방법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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