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공학의 발전은 윤리적 갈등을 자아낸다.

문명이 공학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윤리는 섭리를 묶어 둘 수도 없다.

공학과 윤리의 대립은 하루아침에 아우를 사안이 아니라 사회가 존재하는 한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다.

윤리를 잃어버린 공학이 인류를 어디로 끌고 갈 건지, 현재에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를 내다보는 형안(炯眼)을 찾아나서야 할 것이다.

이 같은 대립이 첨예한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원자력이다.

최근 국내외 원전을 둘러싼 불미스러운 사건 사고들은 사회 수용성을 떨어뜨리고 국민 신뢰도를 좀먹고 있다.

원자력은 애당초부터 정치적이고 외교적이며, 경제적이고 사회적이며, 환경적이고 윤리적인 요소를 둘러싼 복합적 사안이기 때문에 국내외를 불문하고 첨예한 논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게다가 주민 의사와 국민 정서를 거스르고, 안전보다는 진흥에 무게를 둔 원전 정책이라면 결국 국내 수용성뿐 아니라 해외 수출에도 먹구름을 드리울 수 있다. 국내외적으로 한국형 원전의 신뢰 회복이 시급한 시점이다.

원자력 정책은 통상적으로 통치권자에 의하여 결정되며, 이러한 정치적 결정은 국제 협약이나 국내 법률에 반영되어 원자력 관련 활동을 규제하게 된다. 그러나 중대사고나 방사성폐기물에 따른 끊임없는 논쟁으로 원자력의 위험과 편익에 법령 제정과 운영만으로는 충분히 대응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법률은 모든 사태를 미리 구체적으로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원자력법에 있어서도 내재적 원리로서 윤리규범이 필요하다.

윤리규범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하여 그리고 원자력 산업에 특유한 도덕적 규칙으로서 종사자의 365일 행동강령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윤리규범이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 건지, 구속력이 있는 건지는 국민 대다수가 의문을 품고 있다. 윤리규범은 국가의 제정법과 함께 인류사회를 위한 최선의 이익에 기여한다는 목적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현실적 법 제도에 적절한 형태로 투영되어야 할 것이다.

한편, 원자력 윤리규범의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는 몇 가지 정책을 개발할 필요도 있다. 단순히 종이에 쓰인 윤리규범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고, 감시할 수 있는 기구도 필요하다.

암행감찰과 청렴감찰관제도의 확대, 민간기구나 법률단체 등을 통한 감시 감독이 그것이다.

원자력 윤리규범은 투명성과 안전성 확보가 맨 위에 있어야 하며, 예방조치, 경쟁원리, 품질보증, 안전운영, 정보공개, 법령보완 등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독일이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2022년까지 자국의 원전을 단계적으로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독일이 이렇게 선언하기까지에는 17명으로 구성된 안전한 에너지 공급을 위한 윤리위원회의 역할이 컸다. 위원회는 지도자, 철학자, 교수, 정치인, 경제인, 시민단체 대표 등으로 구성되었다. 독일은 원전을 찬반이 아니라 윤리의 문제로 판단한 것이다.

독일의 원전 폐기 절차는 합리적이고 민주적이었다. 총리는 안전위원회와 윤리위원회가 원전의 기술적, 윤리적 문제를 검토하도록 의뢰했고, 이들 위원회는 60일간의 논의를 거쳐 원전 폐기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보고서를 냈다. 안전위원회는 지진, 홍수, 항공기 추락 등 예상 가능한 원전사고, 즉 기술적인 부분을 저울질한 반면, 윤리위원회는 원전으로부터 파생될 수 있는 윤리적인 문제를 다루었다.

각 위원회의 정치적 중립성은 철저히 보장되었다. 이를테면 총리는 자신의 정적인 전 환경부 장관을 윤리위원장에 임명했다. 누가 보더라도 독립성을 갖추었다고 판단하도록 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은 실황 중계와 함께 장시간의 토론을 진솔하고 공개적으로 진행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에너지를 소승적 전문기술 측면 너머 대승적 국민윤리 문제로 파악하는 사고방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윤리규범의 실효성을 확보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지 말고, 국민과 더불어 맞춤형 백년대계의 매듭을 풀어가자.

윤리가 있어야 공학이 서고, 안전이 있어야 진흥이 따르며, 국민이 있어야 원전이 살고, 에너지가 있어야 한반도가 보인다.

201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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