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경컬럼-서균렬 교수

▲ 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본지 주필

고리1호기는 계속운전부터 지금까지 찬핵이든 반핵이든 모두에게 뜨거운 감자다. 국내 원전의 효시로서 1978년 상업운전을 시작해 기술이 일천했던 초기에 80번 넘게 불시정지했던 데다 30년 운영 후 10년 계속운전을 승인받자 환경단체 등은 내리 폐쇄를 주장해왔다.

고리1호기는 2007년 6월 9일 30년 운영허가가 끝나 가동을 멈추었으나 국제원자력기구 검증과 지역사회 합의 등을 거쳐 상업운전을 10년 늘려 8년째 접어들었다. 하지만 정작 지역사회에서는 계속운전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았고, 줄곧 논란을 부추겨 왔다.

계속운전을 뒷받침했던 안전점검보고서에 정량적 근거자료가 모자라고, 추상적인 표현이 많아 전문가의 눈으로도 안전한지 알아보기 힘들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다. 주요 지적사항 중 하나는 건설 당시는 부근에 단층이 발견되기 전이라 지진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간 40년 가까이 값싸고 질 좋은 전기를 공급한 고리1호기인데.

그러던 차에 국가에너지위원회는 고리1호기의 영구정지를 권고하고, 산업부 산하 공기업인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러한 폐로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2020년대에 접어들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운영허가가 끝나는 원전이 10기가 넘는 것이다.

월성1호기는 2022년, 고리2호기는 2023년에 운영허가가 끝난다. 뒤를 이어 고리3호기 2024년, 고리4호기와 한빛1호기 2025년, 한빛2호기와 월성2호기 2026년, 한울1호기와 월성3호기 2027년, 한울2호기 2028년, 월성4호기 2029년 등 모두 11기가 멈추게 된다.

제7차 전력수급계획에서는 2027년 원전이 27%로 석탄 44%에 이어 두 번째이고 2029년에는 석탄 32%, 원전 29%로 격차가 줄어든다. 이들 11개 원전을 만료일에 모두 영구정지한다면 2029년 설비용량의 15%가 빠져나가는 것이다. 과연 가능할까?

국내 에너지 수급 현실을 직시하고 전기의 중요성을 상기할 때, 순차적인 원전의 영구정지는 능사가 아니다. 고리1호기의 경우 한수원 자체 평가에서 안전성 문제도 없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한다. 그렇다면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달리 판단했을까?

민간과 환경단체는 물론 일부 전문가의 끈질긴 안전성 문제 제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월성1호기의 계속운전을 강행했던 한수원과 원안위가 아니었던가. 주민의 반대나 정치적 외압에 무너졌을까, 아니면 원전해체 사업을 선점한다는 판단이었을까.

그간 한수원은 전력이 모자라고, 기후변화에 대한 국제압력이 커지며, 전력생산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반대단체는 기술적 장치를 통해 전력부족은 해소할 수 있고, 1%도 안 되는 시설용량의 고리1호기가 전력문제 해결에 기여하지 못한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전의 계속운전 여부는 안전성, 경제성, 수용성 등을 객관적이고 보편타당한 잣대로 전문가와 일반인이 투명한 의견수렴을 거쳐 결정하는 것이 순리이다.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는 고리1호기와 같은 포인트비치 원전의 20년 계속운전 허가를 발급했다. 이로써 1호기는 2030년, 2호기는 2033년까지 운영허가가 연장됐다. 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포인트비치의 안전계통과 설비, 기술사양서를 면밀히 심사한 다음 사업자가 운영능력을 실증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우리 정부는 이러한 과정을 거쳤을까?

규제위원회는 위스콘신 주 투리버스에 있는 포인트비치1·2호기 계속운전 관련 환경영향 공청회를 열고 주민은 규제위가 고려해야 할 환경문제에 대해 의견을 개진했다. 미국은 규정에 따라 최초 운영허가는 40년까지 발급되고, 그 후에 규제요건이 만족되면 추가로 20년까지 계속운전을 할 수 있다.

고리1호기 30년에 비해 포인트비치1·2호기의 당초 40년 운영허가는 2010년 10월 5일과 2013년 3월 8일 각각 만료될 예정이었다. 이 원전의 계속운전 신청서는 투리버스 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고, 규제위 웹페이지에서도 조회할 수 있다.

최종단계에서 규제위는 주요현안을 요약해 평가 참여자들에게 사본을 보내고, 웹페이지에도 공개했다. 규제위는 환경영향보고서 수정안을 작성, 다시 일반인의 검토를 받기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고, 접수한 주민의견을 반영하여 환경영향평가 최종보고서를 발간했다.

고리1호기는 당시 비용이 총 1,560억 원에 이르는 대역사였다. 한편 원전해체비용은 신규건설비용의 3분의 1 수준인데 경제성 못지않게 안전성이 관건이다.

셰일 가스가 펑펑 나오는 미국에서도 계속운전하는 포인트비치와 동형인 고리1호기를 지금 시점에서 철거하는 것은 국가적인 손실일 수도 있다. 더욱이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국민공감이 선행되지 않으면 정부의 성급한 폐로 결정은 공염불이 될 수도 있다.

한편, 미래창조과학부는 원전해체기술종합연구센터 설립을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에 착수, 2016년 설계에 들어간 뒤 2019년 건립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예비타당성 조사결과 발표가 내년으로 연기되면서 전체적인 일정도 순연될 전망이다.

지난 2004년 국제원자력기구는 2050년까지 430여기가 해체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했다. 시장도 2030년에 500조원, 2050년까지는 100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한수원은 원전 1기 당 사용후핵연료 처분을 제외한 해체비용을 6000억원 정도로 예상했다. 따라서 국내에도 장기적으로 수조원의 해체시장이 형성되는 셈이다.

이같은 추세에 따라 우리나라도 원자력의 최대시장으로 꼽히는 해체분야 진입을 서두르고 있다. 2011년 기준으로 우리나라는 해체를 위한 38개의 핵심 중 17개 기술을 확보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그러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주거지역 오염복원이나 고방사성 폐기물 안정화, 사용후핵연료 처리 등 21개 고난도 기술은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고 전반적으로 선진국의 70%에도 못 미친다. 해체공정 통합평가, 원격제어, 고도제염, 특수폐기물 처리, 환경복원 등 고부가가치 기술이 전무한 것이다.

다소 생소하게 들리는 원전해체란 무엇일까? 얼핏 보기엔 기존의 대형 건물이나 공장 같은 시설을 해체하는 것과 다를 바 없지만 원전의 경우는 방사선이라는 위해요인이 상존하고, 기간도 15년에서 50년 넘게 걸린다는 점이 다르다.

원전해체는 크게 운전정지, 해체준비, 제염, 절단 및 철거, 폐기물처리, 환경복원 등의 단계를 거친다. 해체준비에는 국민에게 사업을 알리고 동의를 구하는 수순도 포함된다. 제염은 말 그대로 원자로 내외부의 방사성물질을 제거하는 것.

절단 및 철거를 거친 대형 금속폐기물과 사용후핵연료의 처분을 위해서는 상당한 규모의 부지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환경복원에서 녹지로 돌아왔다는 판단이 내려져야만 전체작업이 마무리됐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해체 과정은 오랜 기간과 복잡한 단계를 거쳐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해체기간과 비용, 폐기물량이다. 해체의 주체를 정하는 문제나 기술개발 주체인 전문기업을 육성하는 정책방안, 해체산업을 활성화시킬 수 있는 기반구축 등이 동시에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연구용 원자로 트리가마크2·3호기를 해체한 경험이 있다. 하지만 상업용 원전과 연구용 원자로의 규모는 초대형 여객기와 경비행기와 같이 둘 사이의 기술적 차이는 상당히 크다. 정부는 2021년까지 민관 합동으로 1500억 원을 투입, 상업용 원전해체에 필요한 핵심기술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운 바 있다.

고리1호기가 2017년 영구정지되면 5년 정도 원자로 냉각기간을 거쳐 이르면 2022년께 해체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원전해체는 정보통신기술이 융합된 첨단산업인 만큼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기반산업 구축이다.

특히 원전해체는 고도의 안전성과 효율성을 요구한다. 이 때문에 무엇보다 시행절차와 안전부칙 등 세부법규를 마련하고, 해체산업을 총괄할 전담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지금처럼 정부나 공기업, 지방자치단체가 각자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 범국가적 관제탑이 필요하다. 독립적 전문기관인 원전해체청을 만든 영국 사례를 참고하고, 미국과 공동투자 같은 다차원적 국제협력을 동시에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시행착오로 얼룩진 과거사는 뒤로 하고, 이제 중요한 건 선진국의 실패와 실수를 타산지석으로 청출어람의 토종 녹색기술을 창조하고, 고유 안전문화를 정착하는 것이다. 누구나 실패를 하지만 그 실패의 경험과 결과는 동일하지 않다. 어떤 이는 실패를 성공으로 승화시키지만 많은 이들은 실패를 되풀이하게 된다.

국내에도 미 캘리포니아 주 실리콘밸리나 매사추세츠 주 128번 국도와 같이 실패를 우대하고 실패한 이들이 재성장할 수 있는 무한질주 충전소가 즐비해져야 조만간 선진국을 제칠 수 있는 21세기 지속가능 해체산업이 뿌리내릴 것이다. 서 푼짜리 집에 천 냥짜리 문호를 다는 우를 범해서도 안 된다. 국내 원자력 산업 최후의 만찬에 국민과 정부가 모두 주빈이고 동시에 주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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