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한방이야기’ 칼럼 필자 故 김은진 교수

지금으로부터 9년 남직 지난 2005년 9월 5일 동서한의원 김은진 원장(2007년 작고)을 만난 건 행운이었다. 고귀한 인연의 장소는 의외의 곳, 과천경마장이었다. 스트레스는 풀어야 하고 피우고 싶거나 마서야 하는 건 그 때 그 때 즉시 해소해야 한다는 소신이 뚜렷했다. 당시 호탕하시면서도 담배를 좋아하시던 김 원장을 처음 만난 건 모 조교사의 소개가 인연이 됐다. 경마정보지 ‘디지틀경마’ 편집국장을 맡아 경마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고 뛰어든 나에게 경마에 대해 처음으로 멘토가 돼 주신 분이다. 만남 첫날은 일요 경마일 후 저녁이었다. 포장마차에서 가볍게 1차를 하고 안양 1번가 주막으로 어립사리 같이 자리를 옮긴 나에서 김 원장은 의외였다. 신문사 편집국장과 참 인연이 많아 고역을 치뤘다며 당신도 그런 부류냐고 반문하셨다. DNA가 같으니 저도 원장님의 칼럼을 꼭 싣고 싶다고 하소연 하자 흔쾌히 승낙하셔서 다음날 서대문구 신문로 동서한의원으로 사진기자와 함께 인터뷰 약속을 잡게 됐다. 이 인연으로 만났다. 이 후 12회의 고귀한 칼럼을 얻을 수 있었으나 급작스런 작고로 김 원장과의 인연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애독자를 위해 고인을 기리면서 귀옥 같은 인터뷰와 칼럼을 ‘산경e뉴스’에 다시 게재한다. 한 때 ‘의림’지의 표지를 빛내주신 당신의 주옥같은 칼럼을 다시 대변케 해 주신 데 감사를 드린다. <편집자>

 

한의사 새 인식 기폭제 됐으면…

“한의학의 지식과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철학, 물리학을 비롯한 기초과학을 접목한 다양한 학문과 소재들로 채울 겁니다.”

칼럼을 통해 단순히 치료법을 소개하는데 머무르지 않고 인생을 전달하겠다는 동서한의원 김은진 원장.

중국 사천성 성도 중의약대학 객좌교수이기도 한 그는 국내의학계의 정통잡지인 ‘의림’ 에 표지 얼굴로 소개될 정도로 이 분야의 고수다.

한의학 칼럼 의뢰 차 최근 종로구 신문로에 위치한 동서한의원을 찾아가 그의 삶과 인생철학을 소상히 들어봤다. /편집자/

국내 유수의 언론사가 위치한 신문로 2가에 위치한 동서한의원.

다른 매체의 칼럼에서 느꼈던 시원스런 김은진 원장의 문체를 떠올리면서 동서한의원도 넓직할 것이란 예상과 달리 의원 자체는 작고 소박했다.

요즘 보통의 한의원처럼 세련되고 깔끔한 실내 인테리어도 찾아볼 수 없고 그저 포근하고 인심 좋은 시골 동네 의원의 모습이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과 언론사가 자리 잡은 서울의 한복판 신문로에서 말이다.

하지만 70대라는 나이가 믿겨지지 않게 자유분방하고 가식 없는 김 원장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한의원 내의 인테리어는 단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보약은 필요치 않아 밥이 보약

김 원장은 “최근 젊은 한의사들이 첨단 의료기기를 동원해 환자들을 현혹시키고 돈 때문에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고 산모에게 제왕절개를 권하고, 보약만 팔아먹으려고 하는 현실이 아쉬울 따름” 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보약'은 필요치 않은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부족한 것 없는 사지 멀쩡한 사람이 십전대보탕이다 뭐다 먹는 것은 사대부들에게서 시작된 잘못된 과거의 유산을 답습하는 것뿐이라며 건강할 때는 밥만 잘 먹어도 보약” 이라고 보약에 대한 한국인의 잘못된 집착을 꼬집었다.

김 원장은 ‘완치’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단지 의사는 정상인이 되려고 찾아오는 환자의 부족한 것을 보충해 일시적인 고통과 불편을 덜어줄 뿐이라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병’ 을 치료하는 것. 마침 인터뷰 도중 오른쪽에 마비가 온 중풍 초기 환자가 찾아와 치료하는 것을 직접 보게 됐다.

“누구 때문에 병?” 대화로 물꼬

김 원장은 모든 환자의 병은 ‘마음’ 에서 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누구 때문에 병이 생겼는가?” 란 질문으로 환자와 대화의 물꼬를 튼다.

결국 그런 질문의 해답은 환자 본인에게 있음을 깨닫게 하는 것이 김 원장의 첫 치료 방법. 무턱대고 침을 놓고 약을 주는 것이 아니라 환자가 마음을 편안히 갖게 하는 것이 치료의 첫걸음.

김 원장이 한의사면서도 하루 두 갑 이상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것도 개인이 필요하다고 생각해 피우고 만족하면 된다는 생각에서다.

따라서 마음에서 오는 병은 스스로 고칠 수 있으며 ‘바보가 건강하다’는 논리도 치료를 마음의 평안에서 찾기 때문이다.

김 원장은 입학 동기로부터 동서한의원을 인수받은 뒤 27년 동안 줄곧 한 자리를 지켜왔다. 그가 처음 신문 지면에 칼럼을 연재하게 된 계기도 신문로에 위치한 탓이 크다.

신문로서 25여년 줄곧 한자리

김 원장은 지난 2000년 동서한의원 바로 옆에 위치한 내일신문의 편집국장이 치료를 위해 방문했을 때만 해도 칼럼을 쓰리라고는 전혀 생각도 못했다고 한다.

“당시 한의학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진 환자와 그런 인식을 바로 잡으려는 의사로서 대화를 나누던 끝에 불쑥 칼럼 제의를 받게 됐다” 고 지난 일을 털어놨다.

이와 같이 우연히 시작하게 된 칼럼 집필이지만 매주 한편 쓰기 위해 일주일 중 사흘간은 소재를 찾으랴, 글로 옮기랴 부담감도 컸다고 한다.

하지만 한번 시작한 것은 끝을 보는 성격에 1년간 총 50회나 되는 칼럼을 연재할 수 있었다.

시론 맞춰 유익한 내용 최선

특히 이번에 다시 연재하기로 한 ‘김은진의 한방이야기’ 칼럼은 그 때 당시보다 지면량에 구애받지 않고 더 자세히 내용을 보강해 싣겠다고 했다. 칼럼의 소재는 주로 시론에 맞춰 유익한 내용을 찾아서 쓰겠다고도 했다.

아니나 다를까. 현대인의 욕구불만에서 오는 위산과다증이 암으로 발전한다는 ‘갈등은 병을 낳고 변화된다’ 를 시작으로 한 그의 칼럼은 성형수술, 경락, 웃음과 울음 등 매우 다양한 소재가 주류.

 “나는 다른 의사들 칼럼처럼 병명이나 대면서 어떻게 치료하라고 가르쳐주는 칼럼을 쓰려고 했던 게 아니다” 는 말에 한의학에 대한 그의 남다른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상술이 아닌 한의학의 인식을 새롭게 하기 위한 기폭제로서 칼럼을 집필하게 만들었다는 게 그의 설명.

평소 취미를 묻자 김 원장의 시원스럽고 솔직담백한 성격답게 ‘마작과 경마’ 라고 스스럼없이 답했다.

매주 한 두번씩 노인정에서 마작을 즐기고 주말이면 과천의 경마장을 찾지만 단순히 마음의 평안을 찾는 차원이지 그것에 빠져서 패가망신할 정도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집필칼럼 모아 책 발간하는 게 꿈

“수학에 재능이 많아 학창시절에는 수학박사로 통했다. 그래서 공대 건축과 지망을 원했지만 실패하고 난 뒤 찾은 길이 한의학” 이라고 한의학 입문 계기를 밝혔다.

고향은 인삼으로 유명한 개성. 한의학을 선택한 것도 단지 우연만은 아니었다. 김 원장은 이제는 나이에 따라 경지가 깊어지는 한의학은 그의 천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앞으로의 계획은 그 동안 집필한 칼럼들을 정리 보완해 책으로 엮는 것이다.

인터뷰가 아니라 강의라고 느껴질 만큼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 달변가. 자유분방하고 가식적이지 않은 그의 모습처럼 진정한 한의학 책이 산고 끝에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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