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 서균렬 서울대학교 원자핵공학과 교수

후쿠시마 사고 등의 여파로 원전 안전에 관한 사회적 우려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원전 고장과 부품 비리는 국민 불안을 부채질하고 있다. 그러나 왠지 딴 나라 이야기처럼 일상생활에서는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안전 불감증이 번져있는 사회구조 속에서 별로 중요성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원전 종사자들이 이게 국내 원전의 안전 실태라고 말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반성해야 한다.

다름 아닌 그간의 행태가 원자력 업계만의 영역으로 생각하였다는 것과 정부의 패쇄적인 원전정책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국민과의 소통과 화합을 위해 원전 안전의 현주소와 이정표를 국민에게 전달하고 비판과 함께 논의하려 해도 당국은 보이질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내 원전 안전 문제를 다루기 전에 선진국의 사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외 사례로는 프랑스, 독일, 일본, 영국, 미국 등이 있는데 국내 원전 안전 문제를 이해하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원전은 도입 초기부터 강력한 규제 정책 하에서 관리되어 왔다는 점을 주목해야한다. 이러한 원전 규제는 역으로 원자력 산업을 일반 대중의 시야에서 격리시키는 이중적 역할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원전에 대한 논쟁은 후쿠시마 이후 다시 불거졌다. 원전 확대를 기정사실화하고 수출 산업으로도 육성하려는 정부의 관점과 원전 축소와 폐지를 주장하는 단체의 주장이 대립 양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원전 안전 문제가 가장 시급한 사안으로 볼 경우, 현재 정부가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지배 구조도 문제이지만 전반적으로 국민적 차원에서 혁신적 모습은 찾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다 보니 여론에 밀려 정부는 무늬만 원전 비중 축소라는 형식적인 궁색한 대안을 내놓고 우왕좌왕이다. 궁극적으로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관점을 보유하면서도 지금 당장의 원전 안전이라는 발등의 불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선진국의 사례를 보면 원전 산업이 강력한 규제 하에 있으나 경쟁 체제와 민영화가 추진되었다. 민영화로 인한 경쟁 체제에는 장단점이 있다. 원전의 경우 안정성과 경제성의 상반된 변수 간 조화이다. 그러나 경제성의 원칙은 시장 논리로 적용되기 때문에 가격에 비용이 전가, 안정성이 더욱 강화될 소지도 있다.

국내의 경우는 원전 운영의 지배 구조가 공공성이라는 관점에 묶여 있어 비용이 가격에 전가되지 못하고 있어 원전 운영의 안정성에 각종 문제가 쌓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특히, 운영 과정에서 시간 절감, 비용 절감, 인건비 절감, 계약 단가 절감 등 연쇄적인 악순환 고리에 묶여 있다. 수익성, 경제성 논리가 정부 정책으로부터, 공기업과 공기업 간 관계로 강요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 안 될 것이다.

선진국의 사례에서 분명한 것은 운전 운영의 지배 구조가 확고하다는 점이다. 다시 말하면 원전 안전 규제에서 경제성이 아니라 안전성의 원칙을 수립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국가별로 차이는 있지만 공급 위주 정책에서 가능한 한 탈피한다는 시사점을 준다.

국내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혁신적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주요 선진국 사례와 비슷한 원자력 안전 관련 기관을 통합하는 새로운 지배 구조가 필요하다. 원전의 공급을 전력거래 시장에서 벗어나 전력의 공급 안전성을 책임지는 구조로 재편해야 한다.

예를 들면 프랑스 원자력공사와 같은 형태가 요구된다. 한전KPS, 한국전력기술, 한전원자력연료는 한전의 통제구조에서 벗어나 정부와 규제기관의 직접적 관리 아래 재편되어야 하며, 원자력 발전에 대한 민간의 개입과 이권을 최소화해야 한다.

원전 관리의 원칙과 이해 당사자에 대한 소통과 관련하여, 원자력 발전은 국민의 안녕과 국가의 안보까지 담보하는 비용을 계상하여 수익이 아닌, 미래 투자와 안전 비용을 중심으로 운영 원리를 마련해야 한다. 시민사회, 지역주민 등과 새로운 소통 구조를 마련해야 하고, 원자력 관련 종사자들의 적극적 역할이 중요하다.

이러한 전제를 바탕으로 원자력 안전 관련 각종 위원회의 독립적 운영, 원자력 발전 운영 주체들의 대등한 위치와 상호 견제, 민간기업들에 대한 통제, 지역주민 등 시민사회 진영과의 직간접적 소통체계 확보, 원자력 종사자들의 권한 강화 및 고발자로서의 역할 구축 등을 제안한다.

원전 민간개입·이권 최소화해야

결국 원전 안전은 상호간 견제, 사회적 통제, 다층적 관리라는 세 축으로 확보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현재의 원전 산업 종사자들로만 구성된 폐쇄된 문화에서 국민 모두를 이해 당사자로 넣는 개방된 문화로 전환해야 된다는 점도 상기해야한다.

우선 신규원전 건설부지 삼척과 영덕이 환영받고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이 시점에서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가 관건이다. 국내 원전은 충분히 안전하게 설계되고 있는지, 어떻게 안전성을 입증하고 있으며, 후쿠시마 이후 안전강화 조치와 중대사고 개념을 어떻게 적용하는가, 국민의 눈높이에서 꼼꼼히 살펴야 한다.

국내 원전 기자재 공급망의 문제점을 짚어보고 개선방안을 고민할 때다. 공급기기의 품질을 확보하고 비리방지 조치를 강화해야한다. 국내 원전 건설의 문제점을 둘러보고 개선방안도 모색해야한다. 구조개편의 필요성과 계약형태의 타당성을 저울질하고, 안전성과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해 국민이 납득할만한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

국내 가동원전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은 무엇인가도 들여다봐야 한다. 인력양성과 안전문화 확대방안, 주기적안전성평가와 유럽형 극한시험의 유용성, 계속운전의 정당성과 안전성을 국민과 함께 따져보자. 한수원의 건설과 운영 기능을 분리해야 하는지, 국내외 건설과 운영 능력이 있는지, 원전 유지보수 분야의 문제점과 개선방안, 세계 일류 유지보수 능력과의 차이점은 무엇이며 추격전략은 무엇인지 해답이 필요하다.

국내 원전 폐로, 해체, 제염 및 부지복원을 위해 무엇을 어떻게 언제까지 준비해야 하는가, 주체기관 선정, 필수기술과 확보방안, 원전해체연구센터 선정, 사회적 지역적 갈등해소 방안, 국민 홍보방안 등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특히 원전해체연구센터 선정 시에는 정치적 결정을 배제하고 원전이 몰려있는 동해안 지역을 염두에 두어야할 것이다. 인구밀집 지역에 원전 관련 시설이 들어서는 우를 다시 범해서는 안 된다.

지속적인 원전수출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국내 원전수출 구조가 타당하고 경쟁력이 있는가, 향후 수출노형은 무엇인가 진지하게 논의하자. 일괄수주 외 용역, 설계, 기자재, 시공, 운영, 유지보수, 기술용역, 교육훈련 등 단위수출 추진전략은 무엇인가, 국제공조 전략이 있는가, 민간기업과의 연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조목조목 따져보자.

고준위방폐기물 처리 공감대 필요

방사성폐기물 관련 공학적 안전과 사회적 안심 차이를 이해하고, 공용 언어를 시용해 공통 분모를 찾아야 한다. 방사성폐기물 처리가 안전하다는 근거가 무엇이며, 어떻게 입증하였는가, 공학적 안전과 사회적 안심의 차이가 무엇이며, 두 가지의 연관성과 대국민 신뢰 확보방안은 무엇인가, 고준위방사성폐기물 처리와 관련 국가전략으로 어떠한 방안이 채택되어야 하는가 공감대가 필요하다.

미래형 원자로 개발과 핵연료주기 또한 안전성과 경제성 따라잡기가 시급하다. 국내 개발 중인 4세대 원자력시스템이 현 시점에서 타당한지, 향후 50년 국제 시장에서 주도적 위치를 확보할 수 있는지 재조명해보자. 국내 개발 중인 중소형원자로가 국제 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지, 추가로 고려할 미래형 원자로는 없는지도 살펴보자.

안전은 만질 수도 보일 수도 없는 무형의 자산, 원전의 요람에서 무덤까지 한 시도 놓아선 안 되는 뜨거운 감자다. 소모품이 아닌 영구용, 1년 365일 갈고 닦아야 하는 귀금속 같은 존재로 한시라도 소홀히 하면 먼지가 붙는다. 문제는 전문가들마저도 빙산의 일각에 기대어 안전을 논하고 있다는 것이다. 안전을 강화하기 위해선 먼저 전문인, 일반인이 공유, 공감할 수 있는 빙산 전체 그림이 필요하다.

이러한 원전 조감도는 세계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구글 지구에 버금가는 상시상존 세계 원전 상세 지도를 만들어 국부적, 한시적으로만 설왕설래하던 원전 안전을 시공을 초월해 지역 주민은 물론 세계 시민, 현재 세대는 물론 미래 세대와 같이 조감하고 승화시켜 원자력을 화석연료에 이은 기반동력으로 지속가능 발전시키기 위해 진력해야할 것이다.

현재의 원전은 강철과 벽돌, 전선과 유체로 이루어진 무기물. 우리는 거대공학 기술을 접목해 살아 숨 쉬는 유기체 원전을 가상공간에 구축해 운전 첫 날부터, 폐로 마지막 날까지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진단하고 치유해 깨끗하고 값싸면서 믿음직한 원자력을 국민에게 바쳐야 한다. 소모적인 찬핵과 반핵을 제치고 안핵, 즉 안전한 핵을 후대에 유산으로 물려야 한다.

새천년 원자력의 대장정, 활을 멀리 쏘아 보내려면 시위를 먼저 바꿔야 한다. 진흥에서 건설, 운영, 해체, 복원에 이르는 전주기에 세계 최강 안전의 시위로 국민과 함께 활을 45도 각도로 세계시장을 과녁으로 쏘아 올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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