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준 주필

[산경e뉴스] 기후 변화 문제는 지구촌이 직면한 현실적 과제다. 해마다 세계 곳곳이 이상기후로 몸살을 앓고 있기 때문이다.

장성준 주필

남태평양의 섬나라 투발루가 이상기후에 따른 해수면 상승으로 수몰 위기에 처해 있다며 국제사회에 대책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 대표적 사례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는 현재의 온난화 속도라면 2030년~2052년 사이에 지구 온도가 1.5℃ 상승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정도라면 북극과 남극을 비롯해 지구 상당 지역의 생태계에 돌이킬 수 없는 위기가 초래될 수준이라고 우려한다.

이러한 위기의식은 국제사회가 2015년 12월 프랑스 파리에서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당사국총회(COP21)를 열고 ‘파리기후변화협약’을 채택하는 동인(動因)이 됐다.

이 협약은 2016년 11월 발효됐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 후 탈퇴함으로써 그 의미가 퇴색되기도 했다. 그러나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당선 일성으로 임기가 시작되면 ‘파리기후변화협약’에 재가입하겠다고 선언했다. 트럼프의 반(反)기후협약 정책을 폐기함으로써 세계 지도 국가로서 지구 온난화를 더 이상 방치하지 않겠다는 것을 분명히 한 것이다. 국제사회의 노력에 커다란 진전이 기대된다.

이 협약은 결국 협약국들의 실천이 관건(關鍵)이다. 2020년부터 5년에 한 번씩 전 목표치보다 높은 수치로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제출하도록 한 것은 이 점을 고려한 것이다. 유엔도 파리기후변화협정에 따라 각국에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와 2050년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을 2020년말까지 내놓으라고 요청해 왔다.

세계 각국은 이러한 국제사회의 요구에 부응해 탄소중립 목표를 속속 발표하고 있다. 유럽연합과 일본은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중국은 2060년까지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구랍(舊臘) 10일 ‘2050 탄소중립 비전’을 선언했다. 글로벌 과제에 우리도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기후변화와 관련한 국제사회의 요구를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점도 작용했다. 오는 205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 사회를 달성하겠다는 국제적 약속을 뒷받침하기 위해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달 28일 오는 2034년까지의 전력수급전망, 수요관리, 전력설비 계획, 전력시장제도 개선 및 온실가스 감축 방안 등을 담은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확정, 공고했다.

이어 29일에는 제9차 수급계획에 맞춰 2034년까지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를 25.8%로 늘리는 ‘제5차 신재생에너지 기술개발 및 이용보급 기본계획’을 심의, 확정했다.

석탄이나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를 주(主)에너지로 사용한 산업화 시대에 우리는 선진국이 앞서 걸었던 길을 열심히 쫓아갔다. 그 결과 산업화는 이뤘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19년 현재 세계 9위에 달하는 나라가 됐다. 이산화탄소 배출에 따른 온실효과로 지구 온도를 급격히 상승시킨 주요국 가운데 하나가 됐다는 의미다. 이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는 단계에 이른 것이다. 우리에게 탄소중립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탄소중립이란 이산화탄소를 배출한 양만큼 다시 흡수해 배출량을 제로로 만든다는 의미다. 누구도 걸어본 적이 없는 새로운 길이다. 안개 속을 걷듯 끝없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아가야 한다. 그만큼 진전 속도가 더딜 가능성이 높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일자리가 사라질 수도 있다. 새로운 일자리 창출은 그 속도를 쫓아가기 버거울 것이다. 사회적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선 국민적 공감대 형성이 뒷받침돼야만 한다. 정부의 역할이 중요한 이유다.

탄소중립을 실행하기 위해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상쇄시킬 만큼의 숲을 조성해 산소를 공급하는 방법이 있다. 또한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태양열·풍력 에너지 등 재생에너지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것도 좋은 방안이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상응하는 탄소배출권 구매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우리로서는 어느 방법이든 녹록치 않다. 탄소중립을 달성하기 위한 과정은 에너지 생산과 소비 체계를 전면적으로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산업구조를 바꾸는 일이나 진배없다.

탄소중립사회로의 진입은 에너지 효율이 높은 산업구조를 요구한다. 장기적으로 볼 때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산업이 쇠퇴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산업구조 변경에는 천문학적 비용이 든다. 필요한 인력을 길러내기 위한 교육 과정에도 막대한 재정과 엄청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국제적 협력 과정에서 예측하지 못한 다양한 변수가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길고 지난한 과정이 이어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갈등 또한 감내해야만 한다. 그렇다고 산업구조 변화가 안착된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 만큼 시행착오를 줄이기 위해선 물적, 인적 자원의 효율적 활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과도한 정치적 접근은 경계하되 민간전문가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

2050년까지는 앞으로 30년이 남았다. 한 세대가 바뀔 정도의 장구한 세월이다. 현행 헌법상 6명의 대통령이 임기를 채워야 하는 엄청난 기간이기도 하다. 한 정권이 결정짓기엔 갈 길이 너무 멀다. 그런 만큼 5년 단임의 대통령이 자신의 임기 안에 모든 것을 이루겠다고 욕심을 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새로운 정권이 탄생할 때마다 전 정권이 내세웠던 많은 장기적 정책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경험을 적지 않게 가지고 있다. 그런 일이 되풀이 될 경우 앞으로의 30년은 갈등으로 점철되어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문재인 대통령 임기가 1년 5개월도 남지 않았기에 노파심이 드는 것은 지난날의 경험이 아프게 떠올라서다. 탄소중립을 위한 정책이 우리 산업에 새로운 도약의 계기가 될지는 향후 30년을 어떻게 운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그 초석이 올해, 2021년에 놓이게 된다.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신년 벽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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