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윤 원자력 안전과 미래 대표. 편집위원

가동 중단된 원전은 즉시 해체하고 방사선이 거의 나오지 않는 자연수준으로 돌아갈 때까지 안전관리가 필수적이다.

내부에 방사선 준위가 높은 관계로 접근이 제한되는 원전 시설은 특히 임시저장수조에 보관 중인 사용후핵연료를 제외하면 대부분 중저준위에 속한다. 1978년 상업운전이 개시된 고리 1호기가 40년 가동 후 2017년에 영구정지 되었고 이어 계속운전 중인 월성 1호기도 계속운전 안전성 논란 속에 승인된 계속운전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2018년 6월 한수원 이사회에서 조기 영구정지 의결되었다.

원전의 가동중단은 ‘매우 위험할 수 있는 핵’이 사용후핵연료 등 10만년 존재해야 하는 폐기물에 의해 조금 ‘덜 위험할 수 있는 핵’으로 바뀌는 것이어서 지속적이고 꾸준한 안전경각심이 요구된다.

독일은 후쿠시마원전사고 이후 전 원전을 2022년까지 가동중단하고 즉시 해체하여 골치 아픈 ‘위험한 원전’의 두려움은 사라졌지만 이젠 상당한 량으로 쏟아져 나오는 ‘원전보다 덜 위험하지만 그래도 위험한’ 사용후핵연료를 포함한 막대한 핵 폐기물의 골치아픈 저장 및 관리문제를 앞두고 있다.

많은 시민들은 원전의 위협을 고려하여 가동중단과 해체를 원했지만 막상 어느 누구도 핵 폐기물이 내가 사는 곳을 지나가기도, 묻히기도 원치 않는다.

안전을 위한 해체라는 차선을 선택하였지만 자손만대가 영구저장 된 핵폐기물과 함께 살아야 할 숙제가 남았다. 사용후핵연료는 인위적으로 건드리지 않고 영구 보존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인정되고 있다.

인간의 한계를 고려하면 핵은 인간이 영원히 넘을 수 없는 벽일지도 모른다.

1960~1980년대 건설된 세계원전의 수명만기가 도래하는 2020년대 이후부터는 해체산업이 본격적으로 확대하여 세계 해체시장이 549조원에 달할 전망이라는 기사가 나오고 있다.

한국정부는 고리1과 월성1에 대한 영구정지와 함께 대대적인 해체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적극적인 의지를 표명하고 연구개발에만 1조원에 가까운 연구비 투자를 계획 중이다.

이는 탈원전에 따른 원전산업의 출구전략으로 볼 수 있다. 미국원전도 노후화되었고, 유럽은 “Do-no-harm” 원칙을 적용함으로써 원전과 석탄산업에 대한 수조 달러의 민간투자를 배제하여 사실상 녹색기술에서 원전이 배제되면서 세계적으로 원전 가동중단이 줄줄이 나올 수 있다.

그러나 이를 해체산업 육성을 위한 신호로 보기에는 무리다. 많은 원전운영국에서 ‘즉시 해체’보다 ‘지연 해체’를 전략적으로 선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정부에서 2014년 해체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당시 한 컨설팅업체의 용역보고서에서도 당시 영구정지된 세계의 150개 원전 중 해체가 완료된 원전은 19개로 10% 남짓한 상황이었다.

전 원전을 전면 중단한 독일과 같이 즉시 해체하는 경우 상당한 양의 해체 폐기물과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일시적인 처리가 남아있어 부작용이 만만치 않다.

‘즉시 해체’는 원전을 가동하고 건설한 기술인력과 조직이 살아 있는 상태에서 추진함으로써 해체에 효율적이나 고 방사선에 따른 해체 난이도가 높고 과 피폭과 고비용이 수반된다.

또한 10만년을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한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건설에 추가하여 해체로 발생하는 막대한 중저준위 폐기물 저장시설이 추가로 필요하고 장기적인 관리비용도 수반된다.

이에 비해 핵연료가 제거된 영구정지 원전시설 자체는 왠만한 산업시설보다 훨씬 견고하여 그냥 둬도 수백년간 훌륭한 저장시설이 될 수 있다.

핵연료만 제거한 상태로 300년 관리하고 해체하는 경우 방사선이 매우 낮은 수준으로 떨어져서, 일반 산업시설에 준한 해체작업이 가능할 것이다.

‘즉시 해체’는 고방사선으로 인해 많은 노력과 비용이 발생하겠지만 좁은 국토이용 측면과 미래세대에 전가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유리할 수 있다. 하지만 가동 중단된 원전시설을 활용하여 중저준위 폐기물을 보다 안전하게 300년 저장한 뒤 해체할 수 있다면 비용과 안전측면에서 괜찮은 선택이 될 수 있다.

300년은 10만년의 기간과 비교할 수 있는 기간도 아니며, 그동안 부지는 신재생에너지 시설을 설치하여 지역과 공유할 수도 있다. 이는 ‘즉시 해체’에 따른 비용부담을 줄이고 방사선 준위를 낮추어 작업환경을 좋게 할 수 있으므로 가능한 ‘지연 해체’ 비중을 높이고 이에 책정된 막대한 연구비는 2080년까지 가동될 원전의 취약한 안전보강에 투입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일 것이다.

따라서 일시적인 고비용이 수반되는 쪽으로 국가의 원전 해체전략을 정하기보다는 국민적 관심 속에 충분한 소통을 기반으로 다양한 옵션을 가지고 현명한 취사선택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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