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기고 / 4차 산업혁명과 대한민국 (정영춘 SNI 대표이사. 본지 회장)

혁명의 사전적 정의는 종래의 관습, 제도 등을 단번에 깨뜨리고 새로운 것을 세운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혁명에 성공하면 새로운 문명과 문화를 혁신적으로 변화시켜 번창하게 되거나 새로운 권력을 잡고 기존의 사회권력 체계를 청산하고 국가 시스템과 사회를 세울 수 있다. 그러나 혁명에 실패하면 사회적 혼란을 거듭하면서 구체제의 반격으로 쇠락과 몰락을 당하거나 죽음을 각오해야 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지난 10여년간 혼란스런 이명박 정부의 “녹색경제”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에 이어 이제는 문재인 정부조차도 “4차 산업혁명”이라는 주술적인 플래카드를 내 걸었다. 산업혁명! 듣기만 해도 가슴 벅차고 단박에 뭔가 깨지고 온 나라 산업과 경제가 크게 바뀔 것 같다.

왜 우리나라 정부와 국민은 이러한 거창한 구호와 개념을 좋아할까? 심리적으로 열등의식이 강한 사람이나 집단, 또는 후진국가 일수록 이러한 선동적인 말과 구호를 내걸고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18세기 서구가 1차 산업혁명 이후 독자적인 산업기술의 혁신과 원천기술의 발명한 것과 달리 세계적인 산업을 리드한 역사가 거의 없는 나라다.

21세기에 들어 세계 10대 경제 대국의 대열에 들어섰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전쟁의 폐허를 딛고 다른 나라의 원조를 받고 일어나 지난 60여년간 피땀 어린 노동력과 좋은 머리와 교육열로 선진국의 기술과 제품을 모방하여 잘 만들고 팔아서 기적적인 경제 성장을 이룬 경험과 자신감이 전부다. 이런대도 대한민국은 “4차 산업혁명” 의 깃발을 세계 어느 나라보다도 드높게 외치고 있다.        

대한민국이 과연 인류의 기술 문명발전사에서 4차 산업혁명의 근간이 되는 기술혁신의 원동력을 갖춘 주도국인지, 또 성공적인 혁명을 이끌어 갈 역량과 추진 로드맵을 준비해 왔는지 솔직히 뒤돌아보고 반문 해봐야 한다.

산업혁명이란 무엇인가?

앞서 말했듯이 종래의 관습, 제도를 단번에 깨뜨리고 새로운 것을 세운다는 것처럼 종래의 산업 기술과 시스템을 단번에 깨뜨릴 만한 혁신적인 것을 적용하고 현실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스스로 필요 충분한 준비를 거쳐 과거의 것을 단박에 바꾸고 기존 산업을 혁명할 수 있을 만한 근본적이고 원천적인 기술의 발명을 해야 하고 혁명적인 기술과 산업의 물줄기가 자연스럽게 흐르고 스며들 지형과 충분한 토양과 같은 산업구조와 제도를 갖춰야 한다.

그래야 그 산업혁명의 성공의 꽃이 피고 풍요로운 숲을 이루는 르네상스가 펼쳐지는 것이다. 사실 1차(증기기관), 2차(전기), 3차(반도체-컴퓨터-통신) 산업혁명은 영국, 독일, 미국의 발명가들로부터 촉발됐다.

그럼 4차(인공지능) 산업 혁명의 종주국은 대한민국인가? 아니다. 정부가 요란하게 떠드는 4차 산업혁명은 벌써 2차 세계대전 직전 영국의 앨런 튜링이 인공지능(AI)을 창안하고 독일에서 이 아이디어로 인공지능적인 암호 해독기를 개발했고 미국에서는 집채만 한 진공관 컴퓨터지만 인류 최초로 애니악 같은 범용 컴퓨터를 발명하면서 시작됐다.

이와 같이 이미 1차 산업 혁명, 2차 산업 혁명, 그리고 3차 산업혁명까지도 영국과 미국에서 발명가, 과학자, 엔지니어들의 창조력에 의해 주도되었다. 3차 산업혁명이라 불리는 반도체의 발명과 산업화 이후 오랜 도전과 시행착오, 그리고 기업들의 막대한 투자로 본격적인 4차 산업혁명의 진입을 알리는 IBM의 인공지능 왓슨, 구글의 알파고가 2010년대에 탄생되었을 뿐만 아니라 빅 데이터, 자율자동차, 가상화폐, 블록체인, 인공지능 스피커, 감성로봇, 5G통신과 같은 파생기술들과 공유경제, 스마트 팩토리, 무인점포, P2P 결재, 초 연결사회와 같은 인공지능 융합 아이디어들의 원천도 대부분 우리의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적어도 50년 또는 100년 전부터 혁명적인 원천기술을 발명하고 기술을 발전시키며 지식과 경험을 축적시키면서 산업화를 체계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4차 산업 혁명의 주도국들이 있고 그들은 나름 차원 다른 산업혁명 전략과 기술 혁신의 역사가 있다.

현실과 사실이 이러한데 4차 산업혁명이 어디서 시작되었고 무엇이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은 정부는 대책 없이 출범당시 4차 산업혁명을 선언하더니 지금은 야릇한 소득주도 성장-혁신성장-일자리 창출-공정경제 실현 등 경제이론과 정쟁에 파묻혀 경제지표는 악화일로에 있고 시행착오에 따른 후유증이 커지자 어떤 단추를 먼저 끼워야 할지 길을 잃은 듯하여 안타깝다.
 
현실적인 철학과 전략적 성찰이 없는 4차 산업혁명 추구와 인공지능 기술의 무차별 확대는 고용 없는 성장을 가속시키고 성장과실의 이익과 소득에 대한 대기업과 상위계층 쏠림현상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다. 무분별한 스마트 팩토리의 보급과 지원, 그리고 전문성과 준비가 결핍된 공유경제의 실험 등은 대표적인 이율배반적 정책이다.

정부가 지난 수십 년간의 대한민국 경제체질과 시스템을 바꾸고 혁신시킬 절호의 기회라고 외치면서 이같이 어설프고 준비안 된 4차 산업 혁명을 국가 경제발전과 소득경제 실현의 수단과 목표로 삼고 있다면 그건 큰 오판이고 도박이다. 

우리는 솔직하고 냉정하게 우리의 자화상을 잘 들여다보고 우리가 이 역사적인 4차 산업 혁명의 전환기에 대한민국의 역량에 맞는 위치와 자리매김을 정확히 하여 실용적이고 지속가능한 국가적 경제 지표와 로드맵을 설정하는 것이 맞다.

국민 대다수는 4차 산업혁명이 무엇이고 어떻게 무슨 변화를 가져오게 될지도 잘 모른다. 우리나라 중소, 중견기업의 제조업과 종사자들은 거의 3차 산업(전기, 전자, 기계, 화학, 섬유. 기타)에 바탕을 두고 먹고 살고 있다. 사회전반의 시스템과 고용. 서비스 인력시장도 마찬가지이다.

정부는 4차 산업 혁명 기술을 육성한다고 하면서도 블록체인 기술을 발전시킬 수 있는 가상화폐를 두고도 투기 광풍에 놀라 거래소를 폐쇄하기도 하고 공유경제의 대표적인 우버 택시를 불허할 수밖에 없는 제도와 사회적 현실을 깊이 생각하지 못했고 최근에는 카카오택시와 같은 카풀서비스 마저도 큰 사회적 갈등과 이해집단의 충돌 앞에서도 우왕좌왕 전전긍긍하고 있다.

또한 정부가 추구하는 단기간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기존 일자리를 위협하지 않고 증대해야 함에도 이율배반적인 ICT기술 확대와 산업 로봇, 자동화도 아직 도입이 안된 기업에 스마트 팩토리 보급 및 지원에 많은 세금을 쏟아 붓고 있다.

사실 이러한 기술과 시스템의 현실화는 대부분 대기업이 수혜를 받게 되어 있고 중소기업 현실과 업종에 해당 되지 않아 대량 실업과 일자리만 줄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의 노동 인력대비 로봇의 보급률은 세계 1위다. 그만큼 사람의 일자리가 일방적으로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인공지능, 빅데이터, 블록체인, 로봇 등과 같은 4차 산업 혁명의 주요 핵심기술과 사업화는 사실 거대 자본과 시스템이 갖춰진 대기업 또는 초일류 기업들의 몫이고 그들만의 시장이 되어 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오히려 지난 정부와는 확연히 다르게 4차 산업 혁명의 거센 바람과 쓰나미로 부터 기존 산업계를 보호하기 위해 중소기업이 잘 하던 제품을 더 경쟁력 있게 잘 만들고 관련 기술을 고도화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했어야 했다.

그래서 세계시장에서의 경쟁력과 내수시장 활성화, 고용창출을 지속시켜 나갈 수 있었을 텐데 지난 10여 년간 허망한 창조경제니 뭐니 하면서 망쳐놓은 기초산업 체력을 다지고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있다.

그 결과 지금 우리나라 경쟁력 있던 중소기업들은 중국이나 신흥 공업국들에게 갈수록 경쟁력을 빼앗기고 일자리는 감소하여 소비지출이 격감하니 지방의 길거리에 문 닫는 점포는 늘어나고 주요 산업 공단의 활력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4차 산업 혁명과 같은 이 시대의 흐름에 부응한 성공적인 미래를 꿈꾼다면 먼저 우리의 전통적인 역량과 산업 체질을 보다 견고히 한 뒤에 뻗어 나갈 수 있는 혁신 미래를 설계해야한다.

그리고 4차 산업혁명과 같은 혁신적 기술들을 이해하고 응용할 수 있는 충분한 기술력을 갖춘 인재들을 육성해야 하고 몇몇 대기업의 독점적 소득편중에서 중소기업으로 확장될 수 있는 지원과 혁신적인 산업정책을 펼쳐야 한다. 또한 제도와 규제, 리스크와 갈등 해소장치들이 확실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이러한 모든 과정에 충분한 시간과 사회적 논의, 갈등을 넘어설 수 있는 적응기간, 검증기간도 충분히 갖길 바란다.
 
아직도 지구상 대부분의 국가와 시장은 3차 산업혁명 기술과 그 프레임 속에 속해있는 기업과 경제기반에 의존하고 있다. 우리만 온 나라가 4차 산업혁명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동안  경쟁력 있던 우리 뿌리산업과 기술은 오히려 주변국에 뒤처지고 더 깊은 나락의 수렁으로 빠져 들고 있지 않은가.      

정부는 하루속히 경제소득 편중을 획기적으로 해소할 정책을 개발하고 대책 없이 일자리를 줄이는 기술과 시스템 도입을 최대한 억제하고 중소, 소상공인들이 부유해지는 산업정책과 근로 대중경제가 되살아 날 수 있는 민주주의 산업선진화를 정착시키는 게 먼저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업과 국민들은 초조해하지 않고 선순환을 지켜보며 과거 50년 경제기적을 이루었듯이 새로운 산업 민주주의 토대 위에 번영과 성장을 향해 다시 나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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