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한(한국홈쇼핑상품공급자협회 회장. 미래창조과학부 전 차관보)

조선조 유학자들에게 상업이란 물건을 다른 곳으로 옮기면서 부당한 공짜 이익을 챙기는 일이었다.

상품의 본질적인 가치가 전혀 변하지 않았는데도 원래보다 비싼 값을 받는 행위는 사기에 다름 아니었다. 물건을 만드는 장인들은 손에 기구를 들고 돌과 쇠를 만질 뿐 국가 경영이나 성현의 말씀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자신들이 만드는 물건의 원리에 대해서도 제대로 설명해 주지 못했다. 그래도 농업은 정직했다. 때가 되면 씨 뿌리고 거둔다. 그러니 사농공상의 직업질서가 형성되는 것이 당연했다. 자연과학의 존재가 먼지와 같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변했다. 과학기술은 자연 그 자체를 변화시킬 뿐 아니라 자연에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만들어 낸다. 과학기술이 창조의 영역에 진입했다. 이런 세상에서 과학기술을 무시하는 것은 스스로 도태되자는 것과 다름없다. 과거 주먹구구식으로 만든 물건들의 원리가 죄다 밝혀지고 눈으로 볼 수 없던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과학기술이 경쟁의 척도가 되었다. 그래서 모든 선진국은 과학기술의 선진국이며 모든 선도 기업은 과학기술의 리더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 수 있게 된 것도 과학기술에 힘입은 바가 크다. 배고픈 데도 참고 과학기술에 투자를 했다. 그 결과 과학경쟁력과 기술경쟁력은 각각 세계 10위권과 20위권 내로 진입하였으며 기업은 수출로 5,000억 달러 이상을 해외로부터 벌어들이고 있다. 큰일을 해냈다.

대한민국 과학기술의 위상은 꽤 높아졌지만 선진국에 비해서는 아직 부족하다. 우리가 선진국을 모방해서 따라갈 때는 별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선진국과 경쟁하면서 문제가 생겼다. 기술에서 우위에 있어야만 상대편을 능가할 수 있는 제품이 나오는 데 그렇지 못하다. 많이 따라왔지만 상대는 아직도 저 멀리 있다. 또한 과학기술이 국가시스템에 주는 영향력이 작아서 혁신의 맹아가 되지 못한다. 국가 의사결정구조에서 과학기술을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과학기술은 전공한 사람들이 알아서 하는 것 정도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공계 인물들이 국가 권력이나 복잡한 제도적 장치들을 논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여긴다. 민간 부문에서는 과학기술 인력들이 편중되게 배치되어 있다. 고급 기술자는 급여가 많은 대기업으로 가고 중소기업이나 낙후된 지역으로는 가지 않는다. 창업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일에도 주저한다. 모험에 그득 찬 과학기술을 보기 어렵다.
 
앞으로는 과학기술이 국가의 주변에서 중심으로, 안정에서 모험으로 축을 옮겨야 혁신과 성장의 동력으로 제 기능을 할 수 있다. 과학기술이 연구개발과 등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과학기술의 정책대상이 과학기술인으로 한정되면 연구개발비를 둘러 싼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과학기술이 기저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변동에 불을 지피는 역할을 해야 한다. 국가와 국민에게 미치는 영향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역할을 모색해야 한다. 물론 과학기술이 전부는 아니다. 그러나 과학기술이 무언가를 해주지 않으면 발전은 어렵다. 우리는 과학기술입국을 거쳐 과학기술중흥국으로 가려고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기술과 다른 학문들과 활발한 교류가 있어야 한다. 학문 간의 교류와 융합에서 큰 창의와 혁신이 나온다. 
 
노력이 양으로부터 질로, 질로부터 격으로 발전하듯이 과학기술도 변해야 한다.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마냥 확대하기는 어렵다. 창의적인 두뇌들을 대한민국에 유치해야 문제가 풀린다. 우수 인력에게 문을 활짝 열어라. 그래야 산다. 우리 혼자서 못하면 능력 있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지금은 국가에 산재해 있는 현안들을 동시에 풀어야 한다. 이런 문제를 푸는 데 과학기술이 앞장서야 한다. 그래야 국민 속으로 과학기술이 뒤섞인다. 과학기술은 국가의 토대다. 하지만 위로 뿜어지는 강한 에너지가 없다면 과학기술은 그저 놓여있는 죽은 토대다. 과학기술이 펄펄 살아 숨 쉬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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