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준 논설위원

2017년이 밝았지만 우리 경제는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정부는 2017년 경제성장률을 2.6%로 전망했다. 정부가 경제 성장이 2%대에 그칠 것으로 전망한 것은 IMF사태를 겪은 직후인 1998년 이후 처음이다. 경제 상황이 그만큼 어렵다는 것을 더 이상 감추기 어려웠다는 의미다.

대내적으로는 ‘최순실 게이트’에서 비롯된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 현상이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그러다 보니 경제 관련 부처 장관들의 신년사는 비장하기까지 하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마부작침(磨斧作針)’을,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상유십이(尙有十二)’를 외쳤다.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또한 ‘물경소사(勿輕小事) 소극침주(小隙沈舟)’를 들고 나왔다. 하나같이 현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비장한 각오를 밝힌 것이다.

대외적 상황도 녹록치 않다. 오는 20일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면 글로벌 경제에 대한 불확실성은 더욱 확대될 것이란 우려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트럼프가 취임하고 나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색채는 더욱 짙어질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대선 과정에서 줄곧 ‘아메리카 퍼스트(America First)’를 강조해 왔다. 자국 이익을 위해 보호무역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경제에도 걸림돌이 될 가능성이 높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공을 들여 추진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은 비준 절차조차 받지 못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운명에 처한 것도 불길하다. 아시아·태평양지역 12개국이 참여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FTA)이 트럼프의 거부로 추진 동력을 상실했다. 중국과의 마찰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도 굳이 감추지 않고 있다. 이미 원·달러 환율은 1200원대로 올라섰다. 수출에는 호재일 수 있으나 서민에게는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이러한 대내외 악제로 지금 우리 경제는 전진이냐 쇠락(衰落)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그동안은 신흥국의 경제 모델이라는 칭송을 받아 왔다. 외세 침략과 전쟁에 따른 위기를 극복하고 짧은 기간에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뤄냈기 때문이다. 그 배경에는 수출주도형 경제가 자리 잡고 있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뤄냈다. 선진국을 뒤쫓는 추적자(follower)로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그야말로 ‘빠른 추적자(fast follower)’였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단기간에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던 장점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지금 맞이하고 있는 위기는 그동안 효력을 발휘했던 ‘빠른 추적자’로서는 극복하기가 난망(難望)이라는데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제조업 경쟁력이 갈수록 약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특히 중국의 기술력은 우리 턱 밑까지 추격해 왔다. 일부 분야에서는 오히려 우리를 앞선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제는 세계 초일류 기술을 확보하는 ‘베스트 무버(best mover)’가 되지 않고는 현재의 위상을 지키기는 것조차 매우 어려운 실정인 것이다.

정부도 이런 점을 감안해 연구·개발(R&D)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작년의 경우 연구·개발 예산은 19조942억원에 달했다. 올해 예산에도 작년과 비슷한 19조원대가 반영돼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이러한 연구·개발 예산이 제대로 된 성과를 낳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지난 9월 호원경 서울대 의대 교수가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홈페이지에 ‘연구자 주도 기초연구 지원 확대를 위한 청원서’를 올리자 1300여명의 과학자들이 동참했다. 이는 우리의 연구·개발 실태를 극명하게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이들이 요구한 핵심은 1조1000억원인 기초과학 연구비를 2조원으로 늘려달라는 것이었다. 연구·개발 예산 가운데 10%정도만이라도 기초과학 연구에 투자해 달라는 요구였다. 오죽했으면 과학자들이 집단 청원에 나섰겠는가. 그만큼 정부의 연구·개발 정책이 기초과학과는 거리가 멀다는 반증이다.

지금 세계 각국은 제4차 산업혁명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새로운 시대의 물결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현재 정부는 최순실 게이트로 사실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하더라도 실효성 있는 연구·개발 지원에 대한 논의를 멈출 수는 없다. 이는 우리의 미래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사안과는 별개로 연구·개발에 대해 보다 전향적인 지원이 가능하도록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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