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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지진이 우리에게 준 교훈서균렬(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산업경제신문사 | 승인 2016.09.28 10:39

우리나라 수도, 서울은 원전을 짓기에 세상에서 가장 좋은 곳 중 하나이다. 원자로를 식힐 수 있는 물이 흐르고 있다. 매초 100톤 정도 물이 필요하다면, 한강엔 초당 600톤이 흐르기 때문에 이론상 6기를 한 곳에 지어도 큰 문제가 없다. 환경영향 평가를 거친 뒤 난지도에 둥지를 틀수도 있다. ‘꽃섬‘으로도 불리는 이곳에선 행락객과 운전원이 어우러져 꽃길을 거닐 수 있다.

둘째, 전력 소비 지역이 코앞이니 더할 나위 없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전기는 생산지에서 소비지로 오는 동안 30%를 잃게 된다. 이러한 손실을 줄이기 위해 초고전압으로 보내고, 이 때문에 송전탑 주민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면서도 에너지 자급률은 5%에도 미치지 못하는 서울에 원전을 세우면 얼마나 좋을까.

셋째, 지질이 안정성이 확보돼 있다. 지난 9월 12일 경주에서 기상청 관측 이래 최대 규모인 5.8의 지진이 양산단층대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서울에는 이제껏 별다른 지진이 일어나지도 않았고 단층도 없어 보인다. 설사 지진이 난다 해도 규모 7까지 견디도록 건설되고 있는 원전에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당국의 주장대로라면.

넷째, 원전이 지진 이외 사고에 대해서도 충분히 안전하다는 것은 원자력계가 항상 강조하는 부분이다. 원전이 그리 안전하고 친환경적이며, 경제적이라면 도심에 자리 잡는 게 맞다. 원전을 강변할수록 논리는 궁해진다. 실제로 서울시가 한강 둔치에 원전을 짓겠다고 발표한다면 시민과 정치권은 어떻게 할까. 왜 원전은 서울에 세우면 절대로 안 되지만 울진, 월성, 영광, 고리에서는 되는 것일까.

현재 우리나라가 일본의 前轍을 밟고 있는 건 아닐까. 먼 곳에서 돌아가는 원전은 안전할 거라고 믿으면서. 눈에 보이지 않으니, 미음에서도 멀어진 걸까. 사업자는 사업자대로 규제자는 규제자대로 숫자를 맹신하고, 확률을 과신하고, 기술에 자만하는 건 아닐까. 어쩌면 지진보다 무서운 게 한수원과 원안위의 독선이다. 그러는 사이 수명은 소리 없이 안전을 좀먹고 있다.

지진에 관한 한 신토불이 자료는 일천하다. 미국이나 프랑스, 캐나다 등 종주국의 先驗에 기댈 수밖에. 문제는 일본과 달리 미국이나 캐나다나 내진설계가 애당초 느슨했다. 설계 시 낙관적 수치가 녹아들어갔다. 단층 지도도 불확실했다. 짓다가 앞 바다에 활성 단층대가 발견되기도 했다. 미국에서 땅이 가장 많이 흔들리는 캘리포니아 주는 원전 ‘0'을 향해 歸去來辭를 읊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 마지막으로 가동 중인 디아블로 캐년 원전 2기가 2025년 폐쇄될 예정이다. 이후엔 태양열과 풍력 등이 대체한다는 복안이다. 디아블로 착공 3년 후인 1971년, 불과 5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지진 단층대가 발견되면서 원전은 50년 가까이 안전성 논란의 한 가운데 자리했다. 하필 이름도 ‘악마의 계곡’이었을까.

특히 2011년 일본 도호쿠 지방을 강타한 지진해일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대재앙의 우려가 커지면서 디아블로를 영구 폐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었다. 실제 디아블로처럼 해안에 세워져 지진 발생 시 큰 피해를 입힐 것으로 염려된 샌오노프레 원전은 당국의 긴급조사 후 2013년 폐쇄됐다.

2014년 캘리포니아 주에 규모 6.1의 강진이 덮쳐 막대한 피해가 발생하자 디아블로 폐로는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고, 결국 발전회사와 환경단체가 최종 폐쇄 합의에 도달했다. 그러나 당장 원전을 중단하지 않기에 여전히 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시각이 많다. 디아블로는 여전히 시한폭탄으로 내진 규모를 넘는 강진이 나면, 캘리포니아 주 대부분이 후쿠시마 같은 재앙을 겪을 수도 있다는 게 현지 전문가의 얘기다.

2000년대 중반 미국에서 원전부흥이 잠시 불어 주가는 올라갔지만, 여러 회사가 비싼 운영비와 보수비 등으로 발전소를 닫은 뒤 현재는 석양에 접어들었다. 특히 수압파쇄를 앞세워 셰일 단층에서 천연가스와 석유를 값싸게 빼내면서 원전은 다시금 주춤하고 있다. 천연가스발전은 원전보다 훨씬 싸다. 탄소 배출량을 현저히 줄이는 태양, 풍력 등 재생가능 발전에 대한 욕구도 확산되고 있다.

디아블로가 영구히 문을 닫으면 워싱턴 주 컬럼비아만 서부 유일의 원전으로 남는다. 캘리포니아 주는 1976년에도 훔볼트 원전을 단층대 위에 건설했다는 이유로 폐쇄한 바 있다. 한편 디아블로 운영사는 이 원전이 아직 안전하며 지진 안전기준 포함 운영수칙을 모두 준수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업자는 동서고금 글자 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소리다.

울산 앞바다 규모 5.0의 지진에 이어 신고리 부근 활성단층에 대한 충분한 고려가 되지 않았다는 보도가 더해지며 원전 안전에 대한 국민 불안이 증폭되고 있던 중 연거푸 일어난 경주 지진을 보면 이젠 우리도 지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분명하다.

대체에너지 개발이라는 시대적 흐름에도 우리 정부는 아직 원전 사랑에만 눈 먼 건 아닌가 되짚어볼 시점이다. 과연 깨끗한지, 정녕 값싼지...원자력의 속살을 파헤치고, 체감할 수 있는 안전성 강화방안과 새롭게 제기된 한반도 동남부 권역의 지진위협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가 있어야 한다.

0.1g의 지진 발생 시 수동정지는 후쿠시마 이후 강화된 절차이다. 0.1g란 지반이 1초에 1 미터를 떠밀려가는 힘이다. 원전은 이보다 2배, 즉 1초에 2 미터를 떠밀려가도, 신고리 5&6, 신한울 1&2는 1초에 3 미터를 떠밀려가도 안전하게 설계되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특히 월성 1~4호기엔 800개에 가까운 압력관, 냉각관 등이 원자로를 관통하고 있다. 따라서 지침서만 믿고 4시간 버티다간 큰 코 다칠 상황.

2차 지진이 강도가 높은 걸 감안할 때 더 높은 지진을 대비한 수동정지는 비교적 초동대처로 잘한 것 같은데 이에 따른 배경과 입장, 판단근거에 대해 국민에게 좀 더 소상히 알렸어야 한다. 즉, 건물 하부 지진은 운전기준보다 낮은데 그렇다면 굳이 왜 세운 것이며, 후속 지진을 고려했다던가, 지진 후 중수누설 징후는 없다던가, 부지 내 지진계가 각각 달리 쓰이는데 가속도 측정값 하나로 1~4호기 다 멈춘다면 신월성 1&2는 왜 세우지 않았는지 등등.

원전 사고는 규모 면에서나 파장 면에서나 기타 산업과 비교가 될 수는 없겠지만 기존 내진설계를 거쳐 상당한 보강과 노력이 반영되어 있으므로 대응을 잘하고 국민과 안전정보 소통을 혀로 하지 말고, 손과 발로 해야 한다. 이번에 카톡이 내려앉고 비상연락망이 먹통 되며 안전처 경보계통이 무너지는 진풍경을 깔끔히 씻어내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원전 그림자에 가려진 위험 산업시설, 건물, 교량, 대형 구조물 등에 대해서도 이번 기회에 종합진단을 통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비에 나서야 한다. 실제 원전보다 후자에 의해 국민이 직접적인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훨씬 높다. 1300년 견뎌낸 불국사…6년도 못 버틴 신경주역...대한민국 정부는 응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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