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이용 정보 플랫폼 등 노하우와 M&V 방법론 데이터베이스 구축”
에너지경제연구원 에너지수요관리연구실, 김지효 부연구위원

지난 해 12월 파리협정으로 신기후체제가 출범하면서 우리나라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에너지다소비 산업에 의존하여 경제성장을 견인해온 우리나라로서는 온실가스 감축과 경제성장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셈이다. 효율 향상과 절약을 통해 에너지 저소비형 경제구조로의 전환을 도모하는 에너지 수요관리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는 훌륭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온실가스 감축에는 비용이 소요되기 마련인데, 여러 감축수단 중 에너지 수요관리는 비교적 저렴한 대안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비용 절약, 수입대체 효과, 산업경쟁력 확보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할 경우 편익 창출도 가능하다. 에너지 수요관리는 기후변화 대응 측면에서도 매우 잠재력이 큰 수단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30년 글로벌 온실가스 감축량의 약 49%가 수요관리를 통해 달성될 것으로 전망하였는데, 이 비중은 여타 온실가스 감축수단 중에 가장 높다.

우리나라에서는 70년대 두 차례의 석유 파동을 겪으면서 정부 주도로 절약 위주의 에너지 수요관리가 시작되었다. 에너지 수요관리 정책의 양대 축이라고 할 수 있는 효율 개선과 절약 정책을 동시에 추진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수립된 신경제 에너지절약 5개년계획(제1차 에너지이용 합리화 기본계획)부터이다. 이후 2014년 발표된 제 5차 에너지이용 합리화 기본계획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산업, 수송, 건물, 기기 등 부문별 수요관리 정책을 체계적으로 구축하였다. 덕분에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요관리는 정책체계 그 자체만 놓고 보면 선진국 못지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문제는 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에너지효율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쳐진다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2014년 기준 GDP 규모로는 OECD 8위의 경제대국인 반면, 1달러 생산에 OECD에서 5번째로 많은 양의 에너지를 투입한다. 미국, 일본, 프랑스, 독일,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은 1달러 생산에 우리나라 대비 50~60% 수준의 에너지만 투입한다. 이 수치는 선진국과 달리 우리나라가 여전히 에너지를 많이 투입하여 경제성장을 지탱하는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에너지다소비 산업에 대한 높은 의존도를 감안하더라도 우리나라의 에너지이용이 선진국에 비해 비효율적이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에너지 이용이 비효율적일까? 가장 큰 이유는 에너지가격에 환경오염, 기후변화 등 에너지 이용이 유발하는 해로운 외부성의 비용이 제대로 반영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전력요금의 경우 가정용과 산업용 모두 OECD 평균에 비해 요금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그 결과 에너지사용자들이 에너지를 적게 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해 자발적 효율향상 투자와 절약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우리나라의 에너지 수요관리는 규제와 재정지원 등 공적자원을 소모하는 정부정책에 크게 의존해왔다. 두 번째 이유는 에너지이용에 관련된 정보가 투명하고 안전하게 공유되는 시스템의 부재이다. 에너지 수요관리 정책이 효과를 거두려면 정확하고 상세한 에너지이용 정보를 토대로 과학적 분석과 평가에 근거한 정책이 수립되어야 한다. 에너지사용자도 효율향상 투자와 절약에 대한 의사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에너지이용에 대한 충분한 정보를 획득해야 한다. 그러나 개인정보와 연결되어 있다는 이유로 정책연구자와 에너지사용자에게 충분한 에너지이용 정보가 제공되고 있지 않다.  이는 에너지 수요관리 정책의 질을 떨어뜨릴 뿐만 아니라 에너지사용자들의 자발적인 의사결정을 제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정부도 이러한 문제의식에 공감하고 에너지 수요관리 정책을 개선하고자 노력 중이다. 2014년 발표된 에너지기본계획은 수요관리 중심의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였다. 후속 실행계획인 제5차 에너지이용 합리화 기본계획은 정부지원과 규제 중심으로 이루어진 과거 정책의 한계를 인정하고, ‘시장’, ‘정보’, 그리고 ‘기술’을 중심으로 수요관리를 추진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하였다. ‘시장’은 수요관리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 있는 시장 환경을 조성해서 규제와 재정지원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것이다. ‘정보’는 ICT를 활용한 에너지이용 정보 공유 활성화를 통해 수요관리 효과를 높이고, 부가가치를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기술’은 ICT 융복합 기술을 비롯한 수요관리 기술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에너지고효율 기술의 채택을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것이다.

정부의 에너지 수요관리 정책의 방향 설정은 적절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으나, 이에 걸 맞는 정책자원 투입과 성과 창출이 이루어졌는지는 의문스럽다. 일단 수요관리 투자의 정부재원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16년 산업 부문 투자계획을 보면 기업들은 에너지 및 환경관련 설비투자를 전체 투자 대비 1% 이하로 계획하고 있다. 에너지절약전문기업(ESCO) 사업의 경우 2015년 시장규모의 85% 이상이 정부재정에 의존하고 있다. 즉, 에너지사용자의 자발적인 수요관리 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게다가 정부재정 의존도는 높은 상황에서 지원액은 늘지 않으니 수요관리 투자가 전반적으로 침체되어 있다. 또한, 에너지절약시설 투자 자금지원이나 에너지공급자 수요관리 투자사업의 경우 비용 대비 효과성이 도리어 하락하고 있는 추세이다. 에너지이용 정보 공유 활성화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주목할 만한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절약 노하우 등의 정보공유는 비교적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으나, 수요관리 성과를 효과적으로 제고할 수 있는 수단으로 평가받고 있는 에너지 빅데이터 활용에 관한 논의는 여전히 답보 상태이다.

물론 에너지 수요관리 중심의 정책 패러다임 전환을 선언한지 아직 3년의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 큰 성과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 그러나 현재까지의 성과를 점검하고 효율적 에너지 수요관리를 위한 중장기 전략 방향을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첫째, 에너지 수요관리의 시장기반을 조성하기 위해서는 해로운 외부성을 반영한 에너지가격 합리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현재의 에너지가격 체계는 에너지사용자들의 자발적인 효율향상 투자와 절약을 이끌어내기 어렵다. 물론 에너지가격 합리화는 요금인상의 측면에서 국민들의 큰 반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국민들은 공적자원 투입을 비롯하여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위협으로 인한 비용을 직·간접적으로 지불하고 있다. 따라서 해로운 외부성의 비용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공론화와 국민합의 도출 과정이 필요하다. 도출된 합의에 대해서는 장기적 로드맵을 가지고 일관성 있는 정책을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둘째, 에너지 수요관리에 대한 자발적 투자를 활성화시키고 비용효과성을 높일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한다. 산업 부문에 대해서는 자발적 협약의 도입을 고려해봄직 하다. 온실가스·에너지 목표관리제 및 배출권거래제 시행 이후 국내에서는 자발적 협약 형태의 수요관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적절한 인센티브 및 페널티와 병행될 경우 자발적 협약은 에너지 수요관리에 대한 기업의 신축성을 제고하고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는 효과적인 정책수단이다. 영국, 일본 등 주요국은 자발적 협약을 온실가스 감축의 주요한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기도 한다. 가정·상업 부문에 대해서는 에너지공급자 수요관리 투자제도의 강화가 필요하다. 현행 수요관리 투자제도는 공급자에게 수요관리투자 계획을 수립·이행하게 하여 비용효과성이 다소 떨어진다. 장기적으로 수요관리 투자제도를 미국과 비슷하게 에너지 절감량 기준으로 이행한다면, 가정·상업 부문의 에너지효율을 향상하고 절약을 유인하는 데 효과적일 것이다.

셋째, 에너지 정보체계 및 정보교환·활용기반이 구축되어야 한다. 우리나라 에너지 수요관리 정책은 다부문-다법제 정책이기 때문에, 부문 간 시너지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정보체계에 대한 통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현재 부문별로 각기 운영되고 있는 에너지사용 통계를 체계적으로 통합하여 수요자 중심 에너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방안을 고려해볼 수 있다. 또한, 스마트그리드에서 수집되는 에너지 빅데이터를 안전하게 관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 긴요하다. 에너지 빅데이터의 공유와 활용은 에너지 수요관리의 효과를 높이고 관련 부가가치를 창출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주요국은 에너지 빅데이터의 활용도를 높이면서 관리 안전성을 도모하고자 에너지 빅데이터 허브를 구축하고 있는 상황이다. 에너지사용자가 보다 손쉽고 편리하게 에너지이용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플랫폼을 비롯하여 에너지효율 향상 노하우와 M&V 방법론을 체계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 구축도 중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신기후체제 대응 차원에서 저탄소 경제로의 경제발전 패러다임이 변화되고 있다. 우리나라도 더 이상 에너지 저소비형 경제구조로의 전환을 미룰 수 없으며, 에너지 수요관리는 이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이다. 앞으로의 에너지 수요관리는 단순 에너지 절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신기술 개발, 부가가치 창출, 에너지 신산업 활성화의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전 세계 에너지 수요관리 시장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삼아 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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