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후체제대비 에너지 효율성 높이고 저탄소기술 개발이 최선다해야”
에너지경제연구원 기후변화연구실, 이상준 부연구위원

올해 ‘지구의 날(Earth Day)’인 지난 4월 22일은 다른 해보다 좀 더 특별한 의미를 가진 날이었다. 이날 유엔본부에서 개최된 파리 기후변화협정 고위급 서명식에서 전 세계 175개국이 서명하였다. 손녀딸 이사벨을 직접 안고 서명하고 있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사진은 이날의 의미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기후변화 대응은 미래 세대에 대한 약속이며 이제는 신기후체제의 시대이다.

일부 선진국만이 감축의무를 부여 받았던 기존의 교토체제와 비교하여 신기후체제는 모든 국가가 기후변화 대응에 참여하게 되는 새로운 체제이다. 신기후체제의 바탕이 되는 온실가스 감축목표 등을 담은 자발적 기여방안(Intended Nationally Determined Contribution: INDC)을 지난 4월 말 기준 전 세계 배출량의 약 96%를 차지하는 189개 당사국이 제출하였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신기후체제의 도래는 기후변화가 전 지구적 문제이며 전 세계가 함께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공감대를 가지게 되었다는 신호로 읽어야 할 것이다.

기후변화는 환경문제이지만 기후변화 대응은 근본적으로는 경제문제라고 봐야한다. 파리협정이 합의에 이르기까지 지지부진 하였던 수년간의 기후변화 협상 과정이 증언하듯이 경제문제가 결부되어 있지 않다면 협상 과정에서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하여야 할 까닭이 없었다. 지금까지 경제성장의 과정에서 에너지 소비에 따른 온실가스 배출은 필연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모든 당사국이 기후변화 대응에 참여하는 신기후체제는 전 세계가 기존 경제발전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지지하고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파리협정의 합의의 근간은 앞서 언급한 INDC로 통칭되는 국가가 자발적 기여방안을 통한 상향식 구조에 있었다. 목표를 정하고 이행하는 것은 개별국가의 자발성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우리나라 경제의 도전과 기회는 우리나라의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설정하고 이행하는 우리에게 달려있는 셈이다. 우리나라는 작년 2030년까지 배출전망치(BAU) 대비 37%를 감축한다는 목표를 공표하였다.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이행하기 위한 합리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육성해야 하는 과제가 우리 앞에 있는 것이다.

신기후체제가 지지하는 경제발전의 패러다임은 “저탄소 경제”이다. 여기에 우리나라의 위기와 기회가 동시에 존재한다. 저탄소 경제는 그동안 에너지 산업과 시장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새로운 시장과 산업이 출현하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에너지 다소비 업종 등 제조업을 주력으로 성장해 온 우리 경제에 도전이 될 것이다.
한편 에너지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나라의 현실 때문에 우리 기업들은 지속적으로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을 통한 경쟁력 향상에 노력해왔다. 우리나라 주력 산업들의 에너지 효율이 세계적인 수준에 있는 이유다. 신기후체제가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가져도 되는 부분이다.

산업 부문은 우리나라 온실가스 감축목표 이행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는 동시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할 부문이기도 하다. 산업 부문에서 온실가스 감축에 따른 경쟁력 저하의 위험을 돌파하기 위한 치열한 고민과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하겠다.
 
우선 기업들의 기후변화 문제에 대한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필자가 느끼기에는 우리 기업들은 신기후체제가 미래 경제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는 메가트렌드임을 인식하고는 있으나 다소 수동적으로 대응해 왔던 측면이 있었다. 우리 기업들이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기에는 충분한 체력을 기르지 못한 상황이기도 했거니와 그동안 규제 중심의 온실가스 감축 정책 운영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존재하였다. 전 세계가 저탄소경제를 지향하고 있는 지금, 우리 기업들은 능동적으로 기후변화를 전략적 기회로 삼는 중장기적 방향성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전략적 방향성이 실질적인 기회로 체화되기 위해서는 기존 산업에서 저탄소형 혁신과 적극적인 투자가 필수적이며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기 위한 선제적 투자도 필요하다.

우선 기존 산업에서 생산과정의 에너지 효율 부문에 대한 투자가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것은 온실가스 감축과 더불어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할 수 있는 윈-윈 전략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산업부문은 이미 에너지 효율이 높아 추가적인 개선의 여지가 높지 않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그러나 필자가 분석하여 본 결과 우리나라 산업 부문의 개별 업종별로는 다수 업종에서 세계 최고수준의 에너지 효율을 달성하고 있으나 산업전반으로 볼 때 아직 선진국 수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공백이 존재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속적인 효율 개선을 통해 기존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나가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기업들의 신산업에 대한 적극적 발굴과 선제적 투자가 필요하다. 정부도 에너지신산업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성장 동력 창출에 깊은 관심과 적극적 육성의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정부의 역할은 한계가 비교적 분명하다. 정부가 신산업의 기반을 조성하고 초기투자를 주도할 수는 있지만 하나의 산업의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업의 참여가 필요하다. 새로운 산업이 우리나라의 대표적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적극적 투자를 통한 시장형성이 필수적인 과정인 것이다. 이미 우리 기업들은 미래 성장 동력에 대한 투자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신기후체제가 지향하는 신산업·신시장을 선점하기 위해서는 속도감 있는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기업들이 행동이 저탄소 경제를 지향해야 한다. 기후변화 대응과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산업부문의 적극적인 활동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의 역할이 필요한 부문이다. 기업들이 저탄소 경제를 지향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하는 것이다. 시장 환경을 조성하여 기업의 투자를 촉진하여야 새로운 시장과 산업이 자연스레 출현하고 활성화되는 선순환을 기대할 수 있다. 특히 새로운 산업에 대한 투자는 일반적으로 고위험을 수반하기 때문에 기업의 위험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정부 자체적으로 과감한 저탄소, 고효율 에너지 기술개발 및 인프라 투자도 병행되어야 한다.

이제 신기후체제는 시작일 뿐이지만 흐름을 읽고 시대를 앞서가는 것이 추격을 넘어 선도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다. 패싸움에 가까웠던 초창기 축구경기에서 선수들은 근육을 키워 상대방을 제압할 수만 있으면 되었을 것이다. 다소 거친 일반화지만 기존의 경제성장 패러다임은 이런 것 아니었을까.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이 없던 시절에는 많은 에너지를 소비하고 다량의 상품을 생산하는 우람한 근육의 시대였다. 초창기의 축구경기가 분화한 현재 축구경기의 모습을 보면 신기후체제가 지향하는 경제를 상상할 수 있다. 현대의 축구 경기는 화려한 기술의 경연장이 되었다. 세계적인 선수인 리오넬 메시의 왼발에서 뻗어나가는 킥이 그려내는 포물선은 때론 아름답다고 느껴질 정도이다. 우람한 근육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려 한다면 돌아오는 건 휘슬이나 경고일 뿐이다. 현대의 축구처럼 신기후체제는 전보다 적은 에너지를 더 효율적으로 소비하고 저탄소기술을 통해 골을 넣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신기후체제는 게임의 룰을 바꾸었다. 우리나라 산업계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여기에 있다. 바뀐 게임의 룰을 빨리 적응하는 방법은 게임에 직접 참여하여 뛰어보는 것이다. 그래야 스스로의 부족함을 파악하고 그 게임의 룰에 맞게 진화해 나갈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기대한다.

또한 신기후체제의 룰에 맞는 경기장을 국내에 조성하고 적응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다. 정책 담당자의 몫이다. 경제주체가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동참하기를 원한다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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