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태 교수(동국대 원자력에너지시스템공학과)

     

돌이켜보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기술은 초창기에 미국 주도로 지속적으로 개발되어 왔다.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에너지 안보와 에너지의 경제적 생산을 추구하는 국가들을 중심으로 미국의 선진 원자력기술을 도입하여 사용하였다.

원자력기술 도입 초기의 원자력기술 확보전략을 살펴보면, 프랑스는 미국으로부터 지적재산권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우리나라는 기술사용권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원자력기술을 도입하였다.

그 결과 프랑스는 현재 미국과 대등한 원자력 원천기술을 확보하여 세계 원자력 시장에서 미국과 수주 경쟁을 벌이고 있으며, 우리나라는 원천기술과 데이터베이스 부족으로 미국의 협력 하에 세계 원자력 시장 진출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프랑스가 원자력기술 도입 시에 장기적으로 원자력 수출국이라는 큰 비전을 가진 반면, 우리나라는 원자력기술의 국내 사용에 만족하는 데 그쳤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최근에 우리나라도 원자력의 원천기술 확보의 중요성을 직시하고 원천기술 개발에 노력을 하고 있지만 원천기술 개발 분야의 방대함 뿐만 아니라 개발인력 및 개발재원 그리고 개발된 원천기술의 선진성 확보 등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국내 원자력공학과의 위상은 공학계열에서 이미 2류로 추락한 지 오래되었고 신규 원전부지 확보는 지자체의 반대로 국가의 큰 숙제가 되어 버렸다.

이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연계하여 국내의 특정 언론과 시민단체의 원자력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국민들에게 부각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이러한 원자력에 대한 국민들의 시각으로 인해 우수한 인재의 원자력분야로의 기피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고 정치권에서도 원자력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기에는 큰 부담을 안게 되는 형국이 되었다.

따라서 미국 및 프랑스와 대등한 원자력기술을 확보하여 First Mover로서 세계 원자력기술을 선도하고 원자력 수출을 국가 성장동력원으로 삼겠다는 꿈은 잠시 접어두어야 할 판이다.

더욱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이후 국민들의 원전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팽배하던 시기에 원전사고 은폐, 문서위조, 불량부품 사용, 직원비리 등으로 원전에 대한 국민의 신뢰성은 크게 떨어져서 2013년도 여론조사에선 국민 4명 중 3꼴로 원전안전에 대해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원자력기술이 국가에 미치는 영향은 일반 기술과 큰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국가의 위상은 과학기술력 및 경제력 등에 의해 좌우된다고 할 수 있으며 원자력은 이 두 가지 요소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원자력에 사용되는 부품 및 소재들은 고온, 고압, 방사선 환경에서도 안전하게 작동해야 하기 때문에 다른 일반 부품과는 달리 내방사선 첨단소재 개발과 엄격한 품질관리기술 개발이 지속적으로 요구되고 있다. 따라서 원자력 부품 및 소재는 일반 부품 및 소재에 비해 장기간 및 대규모 재원을 투입하여 개발되고 있다.

원자력 기술은 과학기술을 선도하는 미국, 프랑스, 일본, 러시아를 중심으로 개발되어 왔고 이들 국가를 중심으로 신규 원전 수주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우리나라는 미국으로부터 원자력기술 도입 시에 안전성이 이미 검증된 미국의 상용기술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국내 원자력 안전성을 담보한 반면, 원자력 원천기술과 개발 인력 및 시스템의 중요성을 숙비하지 못하였고 그 결과 선진 원자력 원천기술 개발할 수 있는 시스템이 부재한 상태를 토래하였다.

또한 검증된 기술을 선호하는 국내 원자력산업계의 분위기 하에서는 위험을 무릅쓰고 First Mover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국내 원자력 종사자의 개발 의지도 낮을 수 밖에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미국 및 프랑스 등에서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여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원자 수용성의 변화가 크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원전사고 당사자인 일본조차도 국민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강력한 원자력에 대한 지지를 천명한 바 있다.

이는 역사적으로 First Mover 과학기술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선진국에서 일반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며, 이러한 현상은 원자력이 국가 생존과 과학기술 발전 및 경제적 파급효과에 미치는 영향을 선진국에서 깊이 인식하고 있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국내에서는 일반시민들을 대상으로 원자력에 대한 올바른 정보를 전파하기 위해 원자력문화재단을 설립하여 원자력 관련 교육, 홍보, 세미나 및 강연 등을 주도적으로 수행하였으나 수년 전부터 국회에서 예산이 대폭 삭감되어 예전과 같은 활동을 하지 못한 상태이고 더욱이 원자력에 대한 올바른 정보가 찬핵 단체의 원자력 홍보 정도로 치부해 버리는 사회적 분위가 조성되어 있어서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국내의 원자력 상황을 되짚어 보면 원전지역 지자체, 주민 및 시민단체에 의해 반핵 정서가 지역주민에 의해 당선 여부가 결정되는 정치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그 결과 일관성 있게 추진되어야 할 국가 원자력 정책도 순탄치 않게 진행되고 있다고 판단된다.

국내 원자력 환경을 개선하고 명실상부한 First Mover 원자력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국내 및 국외의 원자력 전망을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평가한 후, 산학연관 합의에 의한 중장기적인 원자력정책을 제시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이 산학연관 전문가 그룹의 원자력기술 검증시스템 수립이 시급하다고 판단된다.

▶ 국내 보유 원자력기술(원자력 인허가기술, 설계 및 제조기술, 개발 및 검증기술, 원전 운영기술 및 성능평가/관리기술, 원자력 관련 데이타베이스 등)에 대해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도록 산학연관 전문가 주도의 검증시스템을 개발하고,

▶ 산학연관 검증시스템에 의거하여 향후 확보기술 도출 및 확보기술의 단기/중기/장기 기술개발 로드맵, 추진전략 및 추진체계 도출 그리고 원자력 정책을 제안하며,

▶ 원자력기술 관련 개발/설계/제조/검증/평가/운영 관련 전문인력 글로벌 교육시스템 및 자격인증시스템 확보를 제안한다.

우리나라는 원자력 관련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리 사소하더라도 사생결단의 자세를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원전 계속운전, 신규부지, 중저준위 방폐장 그리고 사용후핵연료 저장 문제가 그러하다.

그러니 어느 누구도 공개적으로 원자력을 대변하는 것을 꺼려하고 있고 한층 높아진 원자력 반대 목소리는 국가의 백년대계를 걱정하기 보다는 당장의 세력확보에 심혈을 기울임으로써 국내 원자력산업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원자력은 국가의 과학기술력과 경제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깊이 성찰하여 정부, 언론계 및 학계의 원자력 진흥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국내 원자력산업계 종사자들은 1980년대 원자력기술 국산화 시기에 가졌던 뜨거운 열정을 되살려서 다시한번 마음을 가다듬고 선진국과 대등한 원자력기술 확보에 전력투구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어떠한 원전사고에서도 방사선누출사고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원자력기술을 확보함으로써 지금도 말없이 원자력에 대한 신뢰를 보내고 있는 국민들게 보답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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