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30년 전 4월, 프리피야트의 새벽은 흔들리고, 체르노빌의 들녘은 스산했다. 문명이란 이름의 소도시에 갇힌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원전사고에 대한 허탈감과 무력감 속에 다시는 생명이 깃들지 못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런 황폐함조차 이겨내고 언 땅을 뚫고 나오는 놀라운 생명의 강인함이 있었다.

사고는 매섭다. 하지만 사고를 일으키는 인간의 과신과 기술의 맹목은 더욱 모질다. 시인의 말처럼 그런 죽음과 절망조차 이겨내는 화초의 소생과 구근의 부활은 그래서 그냥 잔인한 게 아니라 가장 잔인한 달의 독백인지도 모른다. 참사가 일어났던 이 프리피야트에도 자연은 아직 건재하다. 숲이 다시 우거지고 생명이 살아 숨 쉬며 사계가 오롯이 남아있다.

4월은 예수가 죽음을 딛고 일어난 달이기도 하다. 다시 태어나려면 반드시 죽어야 한다. 죽음이 꼭 생명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탐욕을 죽이고, 오만을 죽이며, 과신을 죽여야 한다. 비도덕과 불안전을 묻어야 한다. 그래야 새롭게 태어난다. 죽음을 거부하고 부활만 기대하는 것은 맹신이며 무지의 소치다.

안전한 원전도시를 꿈꾸던 프리피야트는 어느 이른 새벽, 지옥의 문이 되었다.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4분에 일어난 폭발 이후 36시간이 지나서야 대피령이 떨어졌다. 시민들은 1100여대의 버스에 나눠 탄 채 강제로 도시를 떠나가야 했다. 당시 사고로 30만 명 이상이 피난길에 올랐다.

대피령이 떨어진 후 당시 소련 정부는 반경 30 km 이내를 출입금지구역으로 정했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후에는 금지구역을 50 km까지 넓혔다. 이후 소련이 해체되고 오랜 시간이 지나며 프리피야트는 자연의 자정능력에 의해 야생동물과 풀이 무성하게 자라는 곳이 되어버렸다.

하지만 아직도 근처에선 방사능이 자연의 10배를 넘기도 한다. 사고 직후 원전에 씌웠던 콘크리트 구조물은 오랜 세월 비바람에 무너질 위험이 있어 새로운 방호벽을 건설 중이다. 이 초대형 아치형 구조물은 스테인리스 강철로 만들어 높이는 109 m, 너비는 260 m에 이른다.

새 방호벽은 내년 말에 완공되며 앞으로 100년간 방사성물질 유출을 막게 된다. 또 2600명의 기술진이 투입돼 오염물질을 제거하고 원전이 들어서기 전 자연상태로 돌려놓는 폐로작업이 여러 단계를 거쳐 2064년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원전사고 이후 녹지복원까지 80년 가까이 걸린다는 것이다.

역사상 최악의 사고 이후 30년 만에 당시 원전에서 일하던 기술자 3명이 원전을 찾았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채 시간이 멈춰버린 주제어실에 들어간 기술자들의 모습이 자유유럽라디오에 나왔다. 수많은 기술자가 드나들었을 제어실의 바늘, 꼭지들은 그 자리 그대로. 멈춰선 계기판과 잠자는 제어기 앞에 선 이들은 망연자실하였다.

이제 구소련에서 한반도로 눈을 돌리면, 우리나라는 만의 하나 원전사고는 물론 북한도발에도 유비무환해야 하는 이중고를 안고 있는 지구상 유일무이 국가이다. 사고도 사고지만 북핵보다도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원전에 대한 사이버 포함 테러 가능성을 한 시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우리 원전부지 모두 안전할까. 안전하다면 얼마나 안전할까.

유사 시 고속도로 포함, 대피망은 충분히 확보되어있는가. 좁은 땅덩어리 국민 대이동을 감당하고, 공공 대피소는 충분한가.

방사선을 쏘이게 되는 것을 일반적으로 피폭이라고 한다. 어쩐지 으스스한 외래어 직역으로 좀 더 가까이 우리말로는 쬔다는 게 맞다. 사람은 주변환경으로부터 방사선을 끊임없이 쬐고 있다.

일상적 방사선은 건강을 해치지는 않지만 비상 시 일정수준을 넘게 쬐면 몸에 해로울 수 있다.

어쨌든 우리는 언제나 방사선의 바다를 헤엄치며, 때론 핵무기라는 다모클레스의 칼 아래를 걸어다닌다. 방사선과 핵문제를 풀기 위해서 지금은 외교적 대응보다는 민간적 대응 측면을 더 강조해야 한다. 우리는 군복무를 마치고 예비군까지 끝내면 민방위 훈련을 한다. 민방위 훈련은 재래식 전쟁을 가정하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북한이 핵공격을 하면 끔찍한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그래서 방사능방재 훈련과 동시에 민간 대피소를 갖춰야 한다.

알프스 산맥을 끼고 있는 스위스는 세계에서 가장 방호 시설이 잘 되어 있는 나라. 스위스의 진짜 건물은 땅 밑에 있다는 말이 있을 정도. 그 건물이란 전쟁이나 재해가 닥쳤을 때 대피하는 방공시설을 뜻하는데 영세 중립국으로서 대부분 가정이 스스로 대피시설을 갖추고 철저한 안보의식을 갖고 있다.

스위스는 1990년을 넘기며 국민 모두가 대피할 수 있는 시설을 확보했다. 전역에 총 30만 개의 대피소가 있고, 공공 대피소도 5000개를 넘기며 가정에도 비상시를 대비한 대피소가 있다. 주기적으로 응급처치, 대피소 관리 및 구호에 관련한 훈련을 받고 있다.

북핵실험이 있을 때마다 잠시 떠들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손 놓고 허송세월하는 정부와, 그리고 어느 새 紅塵(홍진)에 다시 허우적거리는 시민 사이에서 대한민국의 대피소는 어디에 있는 걸까. 우리도 스위스를 보고 배워야 할 것이다. 최소한 흉내라도 내보자. 공공 대피소를 짓거나 기존 방공호로 활용되는 대피소를 최소한이라도 방사능에 견딜 수 있게 고쳐야 할 것이다.

방사능을 고려해서 2주 이상 머물 수 있어야 하고 대피소 내에 식수, 식량, 변기, 약품, 비상발전기 등을 구비해놓아야 한다. 방사선의 경우 콘크리트는 30 cm, 벽돌은 40 cm, 흙은 90 cm 이상 통과하지 못한다. 이것을 고려해서 시설과 물자를 구비하고 민방위 훈련 때 핵 공격을 가정한 대피훈련을 실시한다면 피해를 막을 수는 없을지라도 줄일 수는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엔 2만3천 여개 공공 대피소가 있으니 숫자상으로는 스위스보다 훨씬 많아 보인다. 하지만 스위스에는 1963년부터 의무화돼 개인주택에도 대피공간이 마련돼 있다. 이렇게 전국에 마련된 대피시설은 스위스 인구 8백만 명을 모두 수용할 수 있고, 이웃과 비교했을 때도 월등히 높은 수치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국민의 70%, 오스트리아는 30%, 독일은 3% 정도만 대피소에 수용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취리히 구시가지에 있는 여느 주차장에도 평소에는 전혀 눈치 채지 못하지만 지하로 들어가 보면 20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는 대피시설이 마련돼 있다. 30 cm 두께의 방호문 2개를 열면 여러 개의 방이 나온다. 공기정화는 물론 난방시설, 화생방전에 대비해 독물질을 제거하는 목욕실과 수술실까지 갖춰져 있다.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24시간 내에 생필품이 공급된다. 최근에는 재해나 화재가 발생할 경우에도 활용되고 있다는데, 비행금지 사태 때 몇 천 명이 공항에 발이 묶인 적이 있었다. 당시 규모가 큰 비상 대피소의 문을 열어 사람들이 그곳에서 숙식하며 정보를 얻고 움직일 수 있었다.

두 차례 세계대전에도 중립을 지켰던 스위스가 대피소의 필요성을 느끼게 된 것은 2차 대전이 발발하면서부터.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리적 특수성 때문이다. 언제 침략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철저한 안보의식과 대피시설을 만든 배경이다.

1960년대 미소의 첨예한 갈등으로 핵위기가 찾아오면서 스위스는 대피시설 건설을 의무화했다. 정치적 중립마저도 방사능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주지는 못한다는 판단에서다. 이런 분위기 속에 70년대 건설 열기 속에 지하 대피소가 크게 늘어났다.

스위스 연방법에는 1명당 2.5 입방미터의 공간을 대피소로 마련하게 돼 있다. 개인주택에 대피소를 짓는 데 1200만 원 정도가 든다고 한다. 이 돈은 모두 개인이 부담하고, 정부에서는 화생방전에 대비한 제독장비를 지원할 뿐이다. 주변에 공공 대피시설이 있는 경우는 집에 대피소를 만드는 대신 일정비용을 자치단체에 내야 한다. 정부와 지자체는 이 돈을 모아 공공 대피소 건설과 유지비용으로 사용한다.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적지 않은데도 스위스 국민은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는데, 이는 지난 50년간 전쟁이나 비상사태가 없어 대피소를 쓴 적은 없지만 이런 시설은 안전을 위한 보험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나라와 가정은 스스로 지킨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있는 것이다.

스위스에는 현역군 12만 명, 예비군이 8만 명 정도가 있다. 이 뿐 아니라 민방위군이 10만 5천 명에 달해 정규군 수준에 육박한다. 민방위 등 국민보호에 배정된 예산도  1500억 원에 이른다.
스위스 전역에서는 해마다 2월 초 비상경보기 7800개를 일제히 점검하고 있다. 당장 쓰지 않는 대피시설이더라도 정기점검을 통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전시에 쓰일 개인 대피소도 5년마다 점검 받고, 공공 대피소는 1년에 4회 점검해서 비상시 필요할 때 즉시 사용할 수 있다.

재해는 일어나기 전에 막는 것이 최선. 평화와 안녕을 위한 비용을 국민이 기꺼이 부담하고, 비오지 않는 날에도 정부가 든든하게 우산을 받쳐주는 스위스에서, 오늘 내일 5차 핵실험에도, 다가올 장마에도 수수방관 한국을 쳐다보면 우리 국민은 얼마나 초라하고, 우리 정부는 얼마나 무능해보일까.

2016년 남한의 4월은 망울진 화초와 끈질긴 구근의 달이어야 한다. 재난은 기다려주지도 비껴가지도 않는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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