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균렬(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본지주필)

서균렬 교수

한산하던 장터에 방(榜)이 나붙더니 이내 남정네들이 북적거린다. 무슨 일이냐 했더니 잘은 모르지만 굿거리 잔치가 있을 거란다. 잠시 후 동네방네 아낙네들도 옹기종기 모여 기다리는데 굿이 열릴 낌새는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 꼬르륵 배곯는 소리마저 들린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다 했던가.

억측만 무성한데 정작 정부는 수십조 원이 들어갈 원자력발전소 해체와 사용후핵연료 관리를 놓고 아직도 갈팡질팡. 관련조직에 기금운용까지 얽혀있는 골목길에서 이해 당사자들이 맞닥뜨려 속내가 엇갈리기 때문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현재 사용후핵연료 관리와 폐로를 위한 비용은 약 17조 원, 이를 누가 언제 어떻게 쓸지를 놓고 잠자리는 같은데 꿈이 서로 다르다.

우선 사용후핵연료 관리방안은 산업부가 올해 안에 발표할 거라 한다. 원자로에서 타고나온 핵연료는 방사열과 방사선을 많이 뿜어내는 소위 고준위 물질이어서 국가가 책임져야할 사안이다. 스무 달 몸살을 앓았던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는 별도기구인 가칭 사용후핵연료기술관리공사 설립을 권고했다. 전담기구를 두고 정부와 업체, 국민이 지분을 공유해 안전하고 투명하고 효율적으로 관리하자는 것이다.

관련비용은 사업자인 한수원이 산업부에 정기적으로 납부해 지난 7월 말까지 6조5432억 원이 모였다 한다. 이 돈을 관리하고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운영하는 한국원자력환경공단은 별도기구가 설립돼 예산을 나누는 방안이 달갑지 않을 것이다. 산업부도 고민이 깊을 것이다. 별도기관을 세우자니 자리만 늘리는 것으로 보일 테고, 공단

에 맡기자니 중저준위와 고준위폐기물은 관리체계가 달라야 한다는 지적을 비켜가기 어렵다.

원전 해체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한수원은 독자추진을 고집하지만 필자와 함께 일각에서는 경험 있는 해외업체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발전소를 부수고 방사능을 씻어내는 해체작업은 국가적 책임이다. 한수원이 적립해 놓은 해체비용은 지난해 말 기준 10조 3313억 원이란다. 이미 사내 전담조직을 꾸린 한수원은 자체수행을 주장하지만, 국내엔 해체경험이 없는 만큼 국제협력을 통해 기술과 전술을 재빨리 닦아야 한다. 어차피 장거리 경주인데 굳이 출발점에서부터 거북이처럼 쫓아가다간 중간쯤에서 땀을 닦을 때 토끼들은 이미 결승선을 지나고 말았을 것이다. 옛 얘기에 나오던 토끼는 사라진지 오래다.

해체방식은 나라마다 달라 무작정 따라 할 수는 없다. 영국은 정부가 관련기관을 설립해 총괄하고 프랑스는 국영 사업자의 자회사가 관리한다. 미국은 민간 사업자에게 맡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가장 어울리는 원전 해체방안은 무엇일까.

고리1호기에 대해 영구정지 결정을 내린 만큼 핵연료 관리와 발전소 해체는 국가적인 공감대를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될 장안의 화두가 됐다. 이에 우리는 첫 원전 해체를 시도하고 있지만 산업부나 한수원은 대승적 제사보단 소승적 잿밥에 더 신경을 쓰는 건 아닌지 내심 걱정스럽다.

우선 해체비용 산정부터 현실감이 떨어진다. 해체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 비용을 어떻게 헤아렸는지 알 수 없고 앞으로 어떻게 쓸 건지도 길라잡이가 없다. 산업부와 한수원은 고리1호기를 해체하는 데 작년 말 기준 6033억 원이 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국제원자력기구가 어림잡은 1조 원에 비하면 턱없이 모자란다. 고리1호기와 비슷한 크기의 미국 원전들의 경우에도 1조 원이 넘었다는데.

산업부와 한수원은 여전히 원자력이 가장 경제적인 발전원이라고 외치지만 각종 사회적 비용까지 감안하면 결코 그렇지도 않다는 반론도 거세다. 물론 어느 한쪽도 현 시점에서 옳고 그름을 국민 앞에 불 보듯 빤히 내 비출 수는 없다. 가늠해야할 변수가 많은데다 시작점과 경계선이 무상(無常)한 홍진(紅塵)에선 모두가 색즉시공에 공즉시색이 아닌가.

사용후핵연료가 인체와 환경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때까지 짧게는 수백 년, 길게는 수만 년이 걸리는데, 그 동안 관리비용을 어느 누가 단언할 수 있단 말인가. 한수원도 고리1호기 계속운전에 대해 안전을 담보하려면 설비보강 등에 많은 돈을 써야 하고, 지역주민에 대한 지원금 부담도 커지기 때문에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발전원가부터 에누리 없이 되짚어보고, 사용후핵연료, 폐로, 송전탑 등 따른 사회적 갈등과 만의 하나 사고 등도 고려해 원자력의 경제성을 다시 따져 볼 일이다.

고리1호기는 2017년 6월 영구정지 후 즉시해체에 들어가 준비단계 2년을 포함해 15년 뒤 마무리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원전의 효시 고리가 해체의 고리를 마련해주는 것인데 한수원은 나름대로 사업비용을 딴 데 놓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현재 해체비용은 선진국을 참조해 잡았다는데 아마도 특히 고리1호기의 경우엔 크게 높아질 것이라 점쳐진다.

영구정지 후 2년간 준비가 끝나면 터빈건물 등 방사능 오염이 덜한 곳부터 헐게 된다. 사용후핵연료는 5년간 식힌 다음 발전소 바깥으로 옮기고, 나머지 계통의 방사성물질을 닦아가며 뜯어 헤치게 된다. 고리1호기 사용후핵연료는 처분시설이 들어설 때까지는 단기시설에 보관될 예정이라는데 단기시설 건설이 늦어질 때엔 이웃 원전에 옮겨가는 것도 고려 중이라 한다.

특히 고리1호기 해체 시 가장 중요한 것은 고리2호기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영향을 미치지 않는 계통부터 허물고, 나머지는 2호기 계획예방정비기간을 이용할 거라니 다행이다. 하지만 2기씩 건설된 원전의 경우 동시해체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 한다.

하지만 선결사항으로 규제정비와 제도개선을 빼놓을 수 없다. 게다가 기술력 확보, 폐기물 처리, 당사자 협의, 기술기준 문서화 등 현안이 태산이다. 이를 유선(流線)화하기 위해선 국내 (가칭)전문기업공동체 설립이 필수 불가결하다. 발전소 운영사가 해체까지 맡겠다고 나서는 건 대형차 영업소가 폐차장과 매립장까지 함께 하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미국의 원전 운영사들이 자체적으로 해체에 들어갔다 예산과 공기(工期)에서 실패한 사례를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아야 하리라.

그러던 차에 원전해체연구소와 사용후핵연료저장소를 연계해 건설하겠다는 산업부의 방침이 사실이라면 고리1호기 폐로결정과 함께 원전해체를 지역의 새로운 먹거리로 키우겠다는 부산시 계획에는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으리라. 그뿐 아니라 40년 가까이 원전을 지척에 두고 살아왔던 지역민에겐 뜬금없는 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산업부는 2030년까지 6100억 원을 투입해 핵심기술을 개발하는 등 원전해체산업 집적화 단지를 조성하겠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사용후핵연료저장소가 끼어있다는 말은 없었던 걸로 안다. 부산, 울산, 경북 등 원전해체연구소 유치경쟁이 과열된 것을 이용해 사용후핵연료저장소를 슬그머니 끼워 넣겠다는 것처럼 곡해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사용후핵연료저장소는 선진국도 선뜻 점찍지 못하고 있는 난제 중 하나. 사용후핵연료와 원전해체산업이 언젠가 같은 배를 타야함은 기술적으론 타당하지만 국민 정서나 주민 체감(體感)을 헤아린다면 숨고르기 해가면 늦을수록 천천히 헤쳐 나가야할 것이다. 아는 길도 물어서 가라 했다. 자칫하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꼴이 될 수 있다. 게다가 닭은 두 마리.

이제 초심으로 돌아가 고리1호기와 함께 해체를 신성장 산업화하고 늦게나마 세계시장에 나서야할 때. 고리를 안전하고 투명하게 철거하기 위한 명품 기업공동체를 만들고, 선진기술을 조기에 빨아들일 수 있는 해외협업체를 찾음과 아울러 청출어람 비장의 국내기술력을 닦는 데 원자력의 사활을 걸어야한다. 어쩌면 다가온 미래원전은 떠오른 해체시장, 부산한 지방단체와 함께 마지막 시험대에 오른 건지도 모른다.

이왕에 소문난 잔치, 상다리 부러지게 차리려다 수수한 상에도 좋아했을 나그네들 놓치지 말자. 시작은 미미해 보일지라도 종국엔 장대한 온난화 해결사 원자력의 부활을 생각하면서.

키워드

#N
저작권자 © 산경e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