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너지 가격 정책’은 현재 창조경제의 추동력을 약화시키는 요인

▲ 나용환 에너지관리공단 부이사장

1. 에너지 공급 우선 패러다임의 종언
지난해 여름은 전국을 밤낮없이 용광로처럼 달궜던 폭염으로 인해 1973년 이래 가장 더웠던 여름으로 기록되고 있다. 열대야 현상도 22일이나 지속되어 19년 만에 기록을 갈아치웠다. 더욱이 원자력발전소 3기가 본격적인 여름철을 앞두고 가동 중단되어 전력 부족까지 겹치면서 국민들은 몇 배의 고통스러운 여름을 보내야 했다.

지난 10년간 여름철 최대 전력 증가율은 4.3%로 공급 증가율 3.0%를 크게 상회하고 있다. 정부의 전력공급량 확충 속도가 국민의 전력사용 욕구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올해의 경우 원자력 가동 중단 등의 영향으로 전력공급 능력이 전년도에 비해 감소(’12년 7,708만kW, ’13년 7,672만kW)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졌다. 말 그대로 설상가상의 상황이 전개된 것이었다.

전력 당국에서는 끌어모을 수 있는 공급 시설은 모두 끌어모으고, 발전소 가동률을 최대화하는 등 가용 가능한 자원을 극대화하기 위한 사투가 매일 벌어졌고, 국민들은 국민들대로 연일 정부의 절전 정책에 참여하느라 지쳐 피곤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공장에서는 절전 규제가 시행되어 조업 시간을 변경하거나 일부 생산라인을 가동 중지해야 했고, 산업체·상업시설·공공기관 등 일정량 이상 전기를 사용하는 대상자는 모두 실내 냉방 온도를 준수해야 했으며, 상점에서는 문 열고 냉방하는 영업 행위가 집중 단속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이러한 전력 가뭄과의 전쟁 결과, 우리는 2011년 9월 15일 겪었던 ‘순환 정전’의 재연을 가까스로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조금만 시야를 넓혀 보면 비단 전력 공급난만이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선진국과 후진국간의 재원 부담 합의 지연 등으로 시간을 벌고 있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에너지 위기 문제도 ‘빅 이슈’로 잠복해 있다.

기후변화 대응은 본질적으로 화석에너지 시스템의 종언을 말한다. 온실가스 배출을 야기하는 화석에너지 사용량을 어떻게 해서든 줄여야만 기후변화 문제가 해결되기 때문이다.

IPCC에 따르면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 온도 상승을 2℃ 이내로 막기 위해서는 글로벌 온실가스 배출량이 2020년부터 하락해야 하며, 특히 2020∼2050년 기간에는 급격한 감축이 필요하다고 한다. IMF 사태로 인해 경기가 급격하게 위축된 1998년을 제외하면 우리나라는 에너지 사용량이 전년에 비해 감소된 적이 없는 국가이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기후변화 문제가 글로벌 이슈화되면서 떠오른 시장이 원전과 신재생에너지분야이다. 둘 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없다고 봐도 무방한 수준의 청정에너지이다. 일단 원전 쪽을 보자면 세계 40여 국가에서 가동 중에 있으며,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프랑스·중국 등에서 개발 확대 계획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원전은 2011년 3월에 일어난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해 역풍을 맞고 있다. 원전의 안전성과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거기다 국내에서 속속 밝혀지고 있는 원전 비리 등의 문제로 인해 ‘과연 향후에도 그동안 우리나라 경제발전을 뒷받침해온 원전 중심의 에너지 공급 정책이 유효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밀양 송전탑 문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대규모 원전을 짓는데 성공하더라도 전력 공급처와 수요처를 연결하는 송전선이 지나가는 지역의 민원을 쉽게 돌파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도 여전히 남아 있다.

신재생에너지 분야로 넘어가도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전세계의 모든 정부는 신재생에너지가 향후 각 국가의 주력 에너지가 될 것이라는 데에는 동의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는 2015년이 되면 신재생에너지가 석탄에 이은 두 번째 발전원, 2035년에 이르면 최대 발전원이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이러한 글로벌한 전망처럼 큰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까? 전세계 태양광 시장의 60%를 ‘박리다매식 전략’을 보유한 중국이 장악했고, 기술력 우위의 독일·덴마크 기업들은 풍력시장의 지배력을 확보해가고 있다. 여기에 석탄화력 발전의 단점이다.

즉 온실가스 다배출 문제를 해결할 탄소저장기술(CCS : Carbon Capture Storage)의 기술개발이 일본·영국·스웨덴 등 주요 국가에서 진행되고 있고, 셰일가스로 대변되는 비전통 에너지원이 출현하면서 신재생에너지는 경제성 부족, 발전의 간헐성 등 에너지원이 갖고 있는 단점만 부각된 채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매년 계속되고 있는 전력 수급난, 메가톤급 화약고를 숨기고 있는 기후변화 문제의 대응에는 해법이 있는 것일까? 창조경제 시대를 맞은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은 어떠한 변화를 가져와야 할까?
 

2. 창조경제 시대의 개막과 우리의 현실
2013년 2월 새 정부는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갈 새로운 경제발전 패러다임으로 ‘창조경제’를 제시했다. ‘창조경제’란 기존의 추격형 경제에서 선도형 경제로 전환하고, 모든 분야의 창의성이 접목된 융·복합 산업을 통해 성장 동력과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한 정책을 의미한다.

창조경제의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성장을 뒷받침하는 경제운영 제시 △산업 전반에 ICT 기술 융합 및 신성장동력과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의 창조경제 주역화 △창의와 혁신을 통한 과학기술 발전 △원칙이 바로선 시장경제 등을 포함하는 실천전략을 마련했다.

이러한 경제발전 패러다임의 진화와 관련하여 에너지 부문의 역할을 크게 나누어 본다면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뒷받침하는 안정적인 에너지 공급과, 관련 산업을 성장 동력으로 발전시키고 이에 따른 신규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에너지 정책은 새 정부의 경제발전 패러다임의 핵심 가치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원천적인 에너지 수요를 억제하기 위한 노력보다 불확실한 수요 증가에 대응한 ‘에너지 공급 정책’과 물가 안정 및 산업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유지되고 있는 ‘저에너지 가격 정책’은 현재 창조경제의 추동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 9.15 정전 사태 이후로 상시화된 전력수급 위기, 원전 가동 중지, 전력 공급설비 확충에 따른 사회적 이슈와 갈등을 통해 현재 에너지 정책의 문제점이 분명히 드러나고 있다. 그리고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전력 수요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원가 이하의 전기요금이 현실화되지 않을 경우, 창조경제 사회로의 전환이 지연될 수도 있다.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지속되는 경제성장으로 2030년까지 에너지 수요도 연평균 1.6% 수준으로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또한 현재와 같이 저렴한 에너지 가격이 지속될 경우 전력 중심의 에너지 소비가 빠르게 증가하고, 발전소 건설 등 공급설비 확충이 늦어질 경우 에너지 수급 위기 역시 지속될 수밖에 없다.


3. 창조경제 시대의 에너지 정책 발전 방향

1) 에너지 요금의 현실화
정부에서는 수요 관리의 핵심인 에너지 요금을 산업부분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낮게 유지해왔으나, 앞에서 살펴본 여러 이유 등으로 공급 확충을 통한 저에너지 요금 정책은 한계를 보이고 있다. 일본 소프트뱅크 등 전기 다소비 기업은 값싼 우리나라 전기요금을 적극 활용하기 위해 전기를 많이 소모하는 IDC 등의 시설을 국내에 설치하고 있다.

국내 건물과 가정에서는 관리가 불편한 유류·가스 냉방보다는 깨끗하고 저렴한 전기냉방기기(EHP)를 선호하여 날로 설치 증가율이 폭증하고 있다. 기존 기름을 사용하던 가열로를 전기로로 바꾸는 공장도 크게 늘고 있다. 우리나라 전기 요금은 원가 회수율이 90% 수준에 불과하며 OECD 국가 중 가장 저렴한 편에 속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하절기와 동절기 전력 수급 위기는 상시화 되고 있고, 현재 경제성이 부족한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는 설자리가 없게 되는 것이다. 국내 수요 관리 정책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에너지 가격 기능 회복이 우선되어야 한다.

이렇게 될 때에만 효율 중심의 수요 관리 강화, 수요관리 산업 육성으로 지속가능한 에너지 시스템 전환이 가속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호에 계속>

필자는…
1955년생으로 전남대 화공과를 나와 에너지관리공단에서 기획관리팀장, 경영혁신TFT팀장, 경영기획관리실장, 지역협력실장을 거쳐 현재 부이사장(2012년∼)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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