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균렬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1953년 12월,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원자력이라고 하는 인류의 경이로운 발견이 죽음이 아닌 삶을 위해 쓰여지기를 바라 마지 않았다. 

국제연합 총회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력’을 제창하며, 원자력을 인류에 대한 저주가 아닌 축복으로 탈바꿈하고자 혜안을 제시했다.

평화의 원자력을 바로 알리기 위해 허심탄회한 대화의 광장을 세계시민 앞에 열어놓은 것이다.

오늘날 국내외 찬반 논쟁은 모두 원자력이 만인의 공동관심사라는 아이젠하워의 정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소련과 미국의 핵무기 경쟁에 대한 깊은 우려가 대통령의 연설에 녹아 들어 있었던 것이다.

원자력은 무수한 알갱이가 어떻게 모여 어떤 힘을 내느냐에 따라 명암이 뒤바뀐다. 결국 사람 손에 따라 재앙이 될 수도, 이기(利器)가 될 수도 있는 것. 바야흐로 원자력 발전은 지구촌 시민과 힘겨운 진실 게임을 하고 있다. 상상하기 힘든 것에 대한 공포, 감지할 수 없는 것에 대한 불신이 바로 그 것.

게다가 국내 원자력계는 최근 불미스런 사건들로 속을 앓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신규 원전 건설을 멈추지는 않았다. 원자력을 메울만한 뚜렷한 대안을 찾기 힘들었던 것이다. 비 온 뒤 땅이 굳어지듯 국민과 함께 미래의 창을 열어보자.

이젠 50년 과거사를 묻고, 앞으로 50년 청사진을 국민과 함께 다시 인화해야 할 시점이다. 

원자력은 신재생과 함께 구관의 줄기세포에 명관의 유전자를 이식해야 한다. 한국수력원자력은 더 이상 눈 감고 오르려고만 하지 말고, 눈을 뜨고 국민에게로 내려와야 한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 했다.

‘한 수 위의 원전’, 즉 ‘한수원’으로 국민에게 유리처럼 투명한 초상화를 선사해야 한다.

영어에서 1월은 두 얼굴을 가진 야누스에서 따온 이름이다. 어두운 그믐달을 뒤로 하면 어스름한 초생달이 보인다. 월성1호기 계속운전은 한국 원자력의 과거와 미래를 가르는 원년(元年)이어야 한다. 허나 보름달은 거저 떠오르는 게 아니다. 한 닢 설비투자에 만족하지 말고, 두 닢 안전장치를 증강하고, 세 닢 사기진작에 진력하며, 네 닢 국민신뢰를 회복하고, 경주의 한가위를 예약해야 한다.

절망은 백해무익, 모두에게 상실로 남을 수밖에. 시대는 커다란 흐름이고, 지워지지 않을 자국이다.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듯 과거 절망의 기록은 미래 희망의 전조일 수 있다. 더 멀리 보면 시간은 끊임없이 다가왔다 어느덧 지나간다.

아무리 원전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안전이 우리를 지치게 하더라도 포기하면 편하다는 자조적인 농담처럼 절망은 무책임한 태만이다.

혹시 자만하진 않았던지, 행여 과신하진 않았던지……초심으로 돌아가자. 99%의 성공에 도취하다간 1%의 실패에 발목 잡힐 수 있다.

현재숙명적 생각은 이제 그만, 어느 시인의 말처럼 “신앙의 선각자들이 말하듯이: 나는 불현듯 다른 사람이 되었다.” 국민의 티끌만한 믿음이라도 저버리지 말고 원전이 새로 태어나야 할 이유이다.

2015.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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