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균렬(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 본지 주필)

 

올해는 광복 70주년, 1910년 한일합병으로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다가 1945년 해방을 맞이한 것. 일본이 항복하게 된 데는 항일운동 못지않게 원자폭탄이 있었다.

그만큼 대단한 위력을 가진 게 바로 원자폭탄으로 70년이 지난 지금도 상흔은 가시지 않고 있다. 특히 당시 히로시마 인구의 절반 가까이 피해를 입은 것인데 지금의 핵폭탄은 그때보다 더 작고 훨씬 더 세졌다.

첫 핵폭탄 ‘삼위일체’가 터짐과 함께 인류는 지구상에서 자멸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이 되고 말았다. 삼위일체 개념은 이집트에서 기원한 것으로 한 신 안에 여러 인격체가 들어있다고 믿었다.

즉, 창조신 아톤과 태양신 라 그리고 여신 마트가 하나의 인격, 즉 삼위일체를 이룬다는 것이었다. 고대 창조-태양-여신은 현대 인공-원자-폭탄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한순간에 인류가 멸망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는 결과적으로 강대국 간 전면전을 수십 년간 억제해온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인간이 가공할 병기를 손에 쥐면 무서워서 싸우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맞았는지도 모른다.

오히려 자동차가 핵무기보다 더 많은 사람을 죽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역설적이다.

현인의 말처럼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우리를 구원한다“고 했듯이 삼위일체 마지막 섭리의 여신 마트에 문명의 명운이 달려있는지도 모른다.

강대국들은 먼저 핵을 보유하고 있으면서 더 이상 핵을 개발하면 안 된다는 원칙을 만들어 놓고 있다.

그리고 바로 물 건너 일본은 외세의 침략 걱정이 거의 없는데도 세계 7번째의 군사강국이 되어 있다.

그들이 가진 기술과 원료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 북한 또한 핵보유국으로 가는 초입에 이미 들어선지 오래다.

원자력으로 치면 대한민국은 동해, 남해, 서해로 갈라진 외딴 섬이지만, 핵무기로 치면 가지려는 북한과 일본, 이미 갖고 있는 중국과 마주하고 있는 특수한 상황이다.

거의 대부분 잊고 살지만 소리 없는 춘추전국시대 한 가운데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미국의 핵우산 아래 있다지만 불안하긴 마찬가지. 북한은 내우외환이 근본적으로 해갈되지 않는 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태도를 분명히 하고 북한의 핵무기 보유의 필요성을 해소시켜서, 한반도에 평화가 정착되길 기대하는 소극적 방관자 외에 딱히 할 일이 없어 보인다.

어쨌든 원자핵이 분열된다는 사실이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19세기 초만 해도 우리는 원자가 물질의 가장 작은 단위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 마저도 쪼개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봤더니 원자핵이 있고 그 주위를 전자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후에 과학자들이 원자핵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는 실험을 했는데 원자핵이 깨지면서 엄청난 에너지가 나온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특히 큰 에너지를 얻으려면 원자핵이 연쇄적으로 분열해야하는데, 그게 가장 잘 되는 물질이 바로 우라늄.

우라늄은 자연에 존재하는 가장 무거운 원소로 여기에 중성자를 부딪치면 우라늄보다 무거운 플루토늄이 만들어지거나, 우라늄보다 훨씬 가벼운 원소인 바륨과 크립톤 등, 소위 핵분열생성물로 쪼개진다.

핵분열생성물은 방사선을 내뿜는 위험물. 플루토늄은 원전은 물론 폭탄의 원료로 쓸 수 있어 인간의 손에 따라 전력을 생산하기도 하지만 폭탄으로 변신할 수 있다.

플루토늄은 우라늄보다 핵분열을 더 잘하고, 사용후핵연료의 재처리를 통해 보다 값싸게 얻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속적인 연쇄반응에 필요한 최소질량이 우라늄보다 훨씬 적어서 폭탄을 만들어도 가벼운 게 장점인데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이 바로 플루토늄을 사용한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강대국이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는 가운데서도 핵을 이롭게 사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대표적인 게 원전 건설. 원자력은 모든 문명이기가 그러하듯이 장단점을 모두 갖고 있었다.

원자력은 우리나라도 그렇고 세계적으로도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가끔 사고가 일어나서 우리를 두려움에 빠뜨리고 있다.

핵은 무기로 시작했지만 값싸고 고갈될 걱정이 없는 에너지원이라는 기대가 컸다.

1953년 유엔총회에서 아이젠하워 미 대통령은 ‘평화를 위한 원자력’을 선포하고 미국은 서둘러 전력 생산용 원자로를 만들어 1957년 시핑포트 원전을 처음 가동, 소련에 앞서 원전 시장을 선점하고 개발도상국으로 핵기술을 이전하면서 사찰의 명분을 만들어 핵무기가 확산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의도가 있었다.

그렇다면 원자력을 현재 세계적으로 사용하는 가장 큰 이유는 효율이다.

발전단가를 따져봤을 때 유연탄 발전의 60%, 태양광 발전의 20% 수준으로 현재 국내에선 가장 싼 에너지.

전력생산에 필요한 연료비를 계산해 봐도 석유보다 싸고, 화력에 비해 이산화탄소를 적게 배출하는 게 장점.

그러다보니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원자력발전을 많이 이용하는 상황. 특히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부족해서 에너지 수입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현재로선 가장 현실적인 대안.

그렇지만 원전도 위험성이 크기 때문에 늘 그 위험성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국민은 원전사고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을 많이 갖고 있다.

체르노빌은 7등급으로 현재까지 발생한 사고 중 최악. 원전사고가 무서운 건 당장의 피해도 크지만 후대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 그리고 방사능이 줄어들려면 길게는 수만 년까지 필요하다. 특히 후쿠시마 경우엔 아직도 사고가 진행 중이고, 들어가 볼 수도 없는 상황이라는 게 더 문제. 어떤 결말에 이를지는 세월이 좀 더 흘러야 알게 될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본은 동쪽에 있으니까 우리한테 영향이 작은 편이다. 하지만 중국이 서해 쪽에 원전을 짓고 있어 만약 거기에서 문제가 생긴다면 방사성물질이 바람을 타고 한 나절이면 한반도 상공을 덮칠 것.

주변에서 이 같은 원전 사고가 일어나면 우리는 존망까지 걱정해야 할 위기에 처해있다. 이런 말이 결코 과장된 표현은 아니다. 체르노빌 사고가 소련을 해체시키는데도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아직은 핵이 무기가 되는 것은 반대하지만, 에너지로 이용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후쿠시마는 분명 원전의 불편한 민낯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이제 우리는 핵을 언제라도 안전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과신에서 핵을 점차 재생가능한 에너지로 대체할 수도 있다는 방향으로 정책을 바꾸어야 할 것이다.

원전사고가 일어나는 빈도가 아주 낮다고는 해도 피해가 워낙 클 수 있기 때문에 일반인에겐 더 자주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으니 만큼 사고가 없을 거라는 자만을 버리고 원자력 이용에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

아담과 하와는 금단의 열매를 먹은 벌로 저주를 받았다. 핵은 달콤하지만 먹고 나면 그 이상의 대가를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원전에선 사고가 나는 것도 걱정이지만 더 현실적인 문제는 사용후핵연료 처리. 원전에서 태우고 난 핵연료에서 나오는 방사선의 세기는 작업자의 장갑이나 신발 등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다.

방사선이 자연수준으로 낮아지려면 수만 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 건 서서히 조금씩 나온다는 것, 그래서 오랜 시간 걸린다는 것. 따라서 격리시설을 어디에 어떻게 만들지 굉장히 어려운 문제다.

핀란드와 스웨덴 정도만 최종 처분장 입지를 확보한 정도이고, 다른 나라들은 부지 선정조차 하지 못한 상태. 핀란드도 지질연구와 부지선정 작업까지 포함하면 30년 넘게 고생했다. 원전을 시작하면서부터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를 심사숙고해야한다. 

방사능이 10만년을 가는 거라면 폐기물을 우리 후대에 넘겨주는 거나 마찬가지. 워낙 긴 시간이 필요해서 그때까지 인류가 살아있을지도 알 수 없지만 지진이나 재해로 봉인했던 판도라의 항아리가 열릴 수도 있기 때문에 큰 문제다.

핀란드는 후세대 문제와 관련해 처분장 표기 방식과 언어를 어떻게 할지 등까지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미국조차 1987년에 부지를 선정한 이래로 20년 이상 논란을 겪다가 오바마 정부 들어 백지화시킨 뒤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의 경우,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이 2~3년 정도면 포화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지하에 영구 저장할지, 재처리할지도 아직 결정하지 못한 상태. 공론화위원회의 제안은 영구처분 전 50년 정도의 중간저장 시설을 건설하는 데 무게를 싣고 있지만 역시 임시방편이다.

시간이 없으므로 일단 중간저장시설을 설치하고 영구처분시설을 논의해야할 것이다. 현 정부의 임기 내에 결정을 내리는 근시안적 처리를 하지 말고 오랜 숙고와 합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원자력의 미래는 인류의 도덕성을 시험하는 척도가 되었다.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한다고 해도 해결하기 힘든 난제를 끌어안게 되었다.

냉전이 끝나고 전쟁의 위험이 감소되었다고 하더라도 사고는 일어나고 있다. 인류의 목적이 무엇이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을 정하고 제도화하는 일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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