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처럼 아예 터빈 발전기까지 갈아 끼우려는 노력 필요
중수로 지진, 해일보다 플루토늄 물질 많이 나온다는데 주의

▲ 서균렬 교수(서울대 원자력핵공학과)

원안위 총리 산하로 강등, 독립적 평가 힘든 원초적 문제
안전이 진흥 밑에 있다 보니 원자력이 제대로 규제못해…

작금의 국내 원자력은 그야말로 사고무친(四顧無親), 사방을 둘러봐도 기댈 데가 없어 보인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꼬였고, 누가 이제 무얼 해야 하고, 또 왜 그래야하는지 원자력계 안팎으로 깃털만 해현경장이다, 거안사위다, 인적쇄신이다 날리면서 정작 몸통은 관성을 이겨내지 못하고 세월과 함께 표류하고 있다. 

그 중심에 선 한국수력원자력 경영혁신 또한 애꿎은 마녀사냥에 그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허울뿐인 기치를 또 앞세우고 왔던 길을 다시 밟고 있지 않은가.

최근 원자력안전위원회에서 월성 1호기 계속운전 여부 결정을 다음 번 심사로 연기했다. 

알다시피 이번 정부 들어 원안위는 대통령 직속에서 총리 산하로 강등되었는데 총리가 바로 원자력진흥위원장이기 때문에 독립적인 평가를 하기 힘든 원초적인 문제가 있다. 

안전이 진흥 밑에 있다 보니 원자력이 제대로 규제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원안위의 독립성이 중요한데 우리나라에서 안전은 겉핥기식이고, 속살까지 파헤치는데 태생적으로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원자력 안전 전문가 또한 유유상종(類類相從), 밖에선 속내를 알아보기 힘들고, 이들을 감시하는 조직도 딱히 없는 게 현실이다. 견제와 균형이 사라진 곳엔 과신과 獨尊이 싹튼다. 

안전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홍보용, 무마용 자료 만들기 급급하고, 전문위원회의 이름으로 안전위원회 올라가면 거수를 하게 된다. 

참고로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 인력이 4천명에 이르고, 독일만 해도 2천명에 이른다. 그런데 5백명 남짓 인력으로 꾸려가는 게 국내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5년 넘게 끌어온 월성 1호기 계속운전 심사는 실질적인 안전개선 사항도 있지만, 보다 형식적인 지진, 해일, 홍수 등 후쿠시마 후속대책과 유럽식 극한조건시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그 중에도 격납용기 압력배출장치, 이동형 발전차량 등이 후쿠시마 사고 같은 상황에서 쓸 수 있을지도 의문이고, 지진 자동정지는 불필요하게 부지가 한꺼번에 정지되어 국가 전력망이 마비될 수도 있는데 이 점 또한 심각하게 고려했는지 일부 전문가들은 묻고 있다.

계속운전 심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허가 전제조건으로 최신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것도 되짚어봐야 할 것이다. 

▲ IAEA(국제원자력기구) 점검단이 2012년 6월 월성원전 1호기 주제어실에서 현장점검을 하고 있다.

그나마 새 발전소라고 하는 것은 압력관 등이 교체된 것이지 안전을 위한 실질적인 개선은 여전히 미흡해 보인다는 것이 일부 전문가의 판단이다. 

캐나다처럼 아예 터빈 발전기까지 갈아 끼웠다면 사업자의 주장이 맞을지도 모른다. 

자동차가 엔진만 갈면 새 차가 된다는 얘긴가. 동력축과 축전지, 배기관, 냉각기, 제동기도 바꿔야 하지 않는가.

노후설비 교체 뿐 아니라 30년 전에 설계된 설비의 안전성이 개선됐는지도 들여다봐야 하는데 이런 관점에서 정부가 계속운전 안전심사를 기술적으로 제대로 했는지도 미지수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까다로운 심사기준부터 만들어야 하는데, 인력도 없이 어느 세월에...

우선 심사부터 들어가야 하는 게 안타까운 현실이다. 

따라서 형식적으로 검토가 진행된 월성 1호기 계속운전은 준비 부족으로 현 상태로선 안전을 기술적으로 신뢰하기 힘들다.

게다가 중수로의 문제는 논란의 한 가운데 있는 단층이나 지진, 해일이나 홍수보다는 플루토늄, 삼중수소 등 핵비확산을 저해하는 물질이 많이 나온다는 것이다. 

인도는 중수로에서 추출한 플루토늄을 가지고 핵실험을 했고, 이로 말미암아 중수로에는 핵확산을 막을 특단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 

더욱이 북핵을 머리에 이고, 탈핵이 허리를 조여 오는 현 상황에서 월성 1호기의 무리한 계속운전은 대한민국의 장래 먹거리는 물론 지속가능한 원자력 發電 자체를 위협할 수도 있다.

첩첩산중, 중수로 하나에서 타고 나오는 연료는 부피로 따지나 무게로 보나 경수로의 5배 이상 10배까지 갈 수도 있다. 

5배로 잡는다 해도 중수로 4기에서 나오는 폐연료가 현재 운영 중인 19기 경수로에서 나오는 것과 같다는 얘기이니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원회가 공회전을 계속하는 지금 월성 1호기 계속운전은 직무유기라 할 만큼 위태로운 것이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라면 승인하기 힘들 것 아닌가. 

무척 늦었고, 많이 잃었지만, 그리고 너무 지쳤지만 초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는 것만이 길이다.
따라서 이젠 계속운전 또한 신규건설과 마찬가지로 눕기 전에 자리를 깔아봐야 할 것이다. 

이젠 원전을 다시 운전하든 새로 운영하든 사업자는 해체와 폐로는 물론 사용후연료를 어떻게 저장할 것인지 구체적이고 확실한 계획을 국민과 정부 앞에 내놓아야 한다. 

국제기구가 권고하는 가시적인 출구 전략도 없는 원전 운영을 계속했다가 불어 닥칠 후폭풍은 누가 감당할 건지. 습식이든 건식이든, 지상이든 지하이든 임시저장이 아닌 영구처분에 대해 국민과 함께 구수회의(鳩首會議)해야할 시점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여러 지자체가 원전해체연구시설 유치에 관심이 높다는 것이다. 

한편으론 폐로 시장이 과대 포장되는 바람에 과열 조짐까지 보이는 중에 정부는 정부대로 부처 간 이견 등으로 서로 눈치 보는 사이 상황은 소강상태에 접어든 것 같다. 

세계 폐로시장이 몇 십 년 사이 1000조 원에 이른다지만 대부분 그림의 떡이고 기껏해야 100조원 수준일 텐데 그나마 가래를 갖고 덤벼드는 선발국 대비 국내는 호미 밖에 없는 형편이라 제 아무리 지금부터 준비해도 토끼 잰걸음을 따라잡기는 힘들 것이다.

어쨌든 폐로와 함께 폐연료 문제는 발등의 떨어진 불인데 솔직히 말하면 정부도 국민도 문제의 심각성과 급박성을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사실과 본질을 통해 감지하기 보단 다소 일방적이고 감성적인 주장과 선전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를 보면 그래도 실낱같은 희망이 보인다. 

당국의 실정과 소통의 부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묵묵히 원자력을 믿는 국민이 남아있다는 놀라운 사실이다. 

이들은 원자력이 한반도에서 회생할 수 있는, 그리고 반드시 그래야 할 마지막 이유이다.

좁은 땅덩어리에선, 아니 미국처럼 넓은 나라라도 10만 년 이상 흔들리지 않고, 지하수 한 방울 없는 암반을 찾느니 하늘의 별을 따오는 게 쉬울 것이다. 

게다가 지진이 나면 폐연료가 묻혀있었든 아니었든 환경은 물론 인명과 재산 피해는 가히 천문학적일 것이다. 

내 집 뒷마당엔 묻으면 안 된다는데 폐연료가 대형차에 실려 내 집 앞길 지나가는 게 되겠는가. 

과연 인구밀도마저 높은 우리에게 남은 땅이 어디 있겠는가. 부지에 관한 한, 구관이 명관일 수도 있다. 정말 안전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자.

진흥의 각도에서 안전을 조명하는 데서 오는 피해는 결국 우리와 미래 세대가 나눠지고 갈 짐이다. 

우리가 만들어 모두가 기대고 있는 안전의 민낯을 돌아볼 轉禍爲福의 기회로 삼는다면, 실제적인 안전개선을 위해 反面敎師할 계기가 된다면, 현재의 월성 1호기 연장문제는 우리에게 비싼 대가이겠지만 결코 아깝지 않다고 본다. 

오늘 원자력계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30년 전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용기 있는 변화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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