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준 주필

순치(馴致)라는 말이 있다. 국어사전에 ‘짐승을 길들임’ 또는 ‘목적한 상태로 차차 이르게 함’이라고 나와 있다. 한마디로 힘 있는 권력에 길들여진다는 점을 일컫는 말이다. 최근 이 말이 화제가 됐다. 지난 6월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였다. 당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에 대한 감찰과 검찰개혁에 대해 논란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검사 출신 송기헌 의원이 “장관 같은 분도 검사들과 일하다 보면 검사들에게 순치되는 것 아닌가”라고 추 장관을 쏘아붙였다. 이 말에 추 장관이 “굉장히 모욕적”이라고 반발했다. 자신을 검사들 손아귀에 놀아나는 존재로 여겼다고 발끈한 것이다.

순치의 대척점 부근에 항심(抗心)이 있다. 권력이 무언가 옳지 않다고 여기는 것을 강요하는 것에 대해 저항하고자 하는 마음이다. 언론은 이러한 정신을 항상 되새기는 존재다. 사회의 목탁이라는 자부심으로 취재 현장을 누비는 힘도 여기서 나온다. 국민과 언론과의 신뢰관계 역시 이러한 노력이 쌓여 형성된다. 설혹 논조가 내가 생각하는 바와 다르다 해도 시시비비를 가리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해 주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뢰는 국민과 언론을 이어주는 탯줄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공자가 무신불립(無信不立)을 설파한 것은 널리 알려져 있다. 국민과의 신뢰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이미 2500년 전에 파악한 것이다. 어떠한 왕조도 백성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것이 어찌 왕조에게만 해당하겠는가. 현대의 여느 정권도 마찬가지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하면 권력을 내려놓아야 한다. 특히 국민의 손으로 직접 선택하는 민주 국가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언론 역시 예외는 아니다.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한 언론은 존재가치를 잃는다.

지난 2013년 원자력발전소 부품 시험 성적서가 위조된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언론은 연일 후속 보도를 쏟아냈다. 타락한 일부 원전 마피아로 인해 우리 원전이 제2의 후쿠시마 사태에 직면하는 것 아니냐는 탄식이 나올 정도로 여론은 비등했다. 그 여파가 남아있던 이듬해인 2014년 6월 산경에너지는 창간돼 오늘 지령(紙齡) 200호를 맞았다. 6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산경에너지는 과연 순치가 아닌 항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자부할 수 있는지 자문(自問)해 본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원전을 없애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특히 정부가 탈원전 정책을 강력히 추진하면서 발전 업계에서조차 원전을 절대악으로 보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발전 관련 업계에서는 심지어 원자력 관련 학과가 폐과되어야 마땅하다는 극단적 언사도 서슴지 않는 분위기다. 원전이 그렇게 위험한 시설이라면 왜 우리는 그동안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을까 의문이 들 정도다. 더구나 2013년 당시에도 이러한 주장은 일부 환경운동가들에 그쳤다. 지금 탈원전에 동조하는 전문가조차도 제대로 나서지 않았다. 

원자력 마피아가 자신들의 이익을 유지하기 위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될 원전을 가지고 국민들을 기만해 왔다는 게 사실이라면 그때는 정말 몰랐단 말인가. 우리나라에서 원전이 상업 발전을 시작한 것은 40년이 넘었다. 아무리 원전 전문가들이라도 이렇게 긴 세월동안 이를 은폐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것인가. 그동안 침묵하다가 이제 와서 정의의 사도라도 된 양 탈원전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원전 부품 시험 성적서 위조가 적발된 것은 박근혜 정권 때였다. 지금은 문재인 정권이다. 만약 원전이 이 땅에서 폐쇄되어 마땅한 시설이라면 왜 당시는 그러한 주장이 힘을 얻지 못했고, 지금은 왜 정반대 상황이 되었는가. 문재인 정권이 집권한지 3년 반이 됐을 뿐인데 상황은 극과 극을 치닫는다. 그때는 순치되었고, 지금은 정당한 주장인가. 그렇다면 박근혜 정권에서 이러한 점을 외면했던 상당수 언론은 지금이라도 반성문을 써야 마땅하지 않는지 의문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세상에 완벽한 시설은 없다. 그래도 중요 시설은 건설 당시의 최신 기술을 총동원한다. 특히 국가 기간산업 시설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완벽한 것은 결코 아니다. 모든 기술에는 빛과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원전 또한 마찬가지다. 한번 사고가 나면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위험한 시설이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선해 오고 있는 것이다. 사고 위험 가능성 때문에 없애야 한다면 남아있을 시설이 과연 얼마나 있겠는가. 상반된 주장의 접점이 있는지를 찾는 작업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그럼에도 논점은 탈원전 여부에만 머물러 있다. 원전 관련 일자리조차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장점은 사라지고 단점만 부각되는 일이 확산되고 있는 형국이다.

순치라는 말은 법무부 장관에게만 모욕적인 말이 아니다. 특히 언론에게 순치되었다는 말은 존재가치를 잃었다는 말과 동의어다. 모욕이 아니라 당장 문을 닫으라는 사형선고와 같은 말이다. 언론은 어느 정권에서든 부화뇌동하며 순치된 존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귤화위지(橘化爲枳) 고사를 되뇔 필요조차 없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귤이 탱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1년 반 뒤 새로운 정권이 탄생하고 정책이 바뀌면 그때 또다시 그것을 쫓아갈 것인가. 언론이라면 언제든 비판적 시각을 잃지 않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해야 한다. 산경에너지가 지령 200호를 맞아 독자 여러분께 약속하는 다짐이다. 짠맛을 잃으면 소금이 아니듯 언론이 비판이라는 항심을 짊어지는 건 숙명이다. 독자 여러분의 끊임없는 질책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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