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

전세계 반도체 시장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해 촉발된 미중 무역갈등과 일본 수출규제가 국내 소재부품장비에 영향을 끼치고 있고 여기에 올해 초 코로나19가 더해졌다.

코로나19와 더불어 비대면 사회로의 이행은 반도체산업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5G 기술 기반의 데이터처리 속도 역시 새로운 시장 창출을 견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대표적인 분야가 시스템반도체다. 시스템반도체는 기존 규모 중심의 메모리반도체에 비해 기술집약형 다품종 소량생산을 특징으로 한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세계 반도체 기업들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최근 미국 엔비디아가 영국 팹리스 기업 ARM을 인수한다고 발표하면서 반도체 핵심 설계를 미국이 독식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

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상근부회장도 우리나라가 시스템반도체 분야로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스마트폰은 물론 향후 스마트시티, 스마트팩토리, 그리고 인공지능(AI) 툴을 통해 새롭게 창출된 시장에서 승부를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국내 시스템반도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 중요하다고 봤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설계 분야는 취약한 상태다. 핵심 설계 기술의 해외 의존도 역시 여전히 높다. 이 부회장은 국내 기술자립화를 통해 우리만의 협상 파워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기업들의 연구개발(R&D) 및 내부역량 강화를 지원하는 협회 차원의 지원사업을 전개해 나갈 계획이다.

산경에너지는 200호 특집으로 이창한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을 만나 국내 반도체 시장 전망과 협회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 지난달 23일 반도체 IR 컨퍼런스를 진행했다. 지난해까지 ‘반도체 성장펀드’로 진행된 IR 컨퍼런스에 올해부터 ‘시스템반도체 상생펀드’가 추가됐다. 무엇이 달라졌나?

A : 2017년부터 운용 지원하는 반도체성장펀드(2163억원)를 통해 성장잠재력과 기술경쟁력을 갖춘 중소 반도체기업을 수시 발굴해 투자 연계를 지원하고 있다. 투자사(VC)를 초청해 IR컨퍼런스를 개최해 반도체기업의 투자금 확보, 기업성장을 지원하는 방식이다. 올해 8월 시스템반도체 상생펀드(1000억원)가 추가 조성돼 반도체펀드에 대해 기업뿐만 아니라 투자자의 관심도 더욱 높아졌다.

시스템반도체 펀드는 중소 중견 팹리스 기업에 대한 집중투자를 통해 메모리반도체에 비해 취약한 국내 시스템반도체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취지로 조성됐다. 그동안 팹리스 창업기업이 거의 없었는데 최근 들어 인공지능반도체, 바이오/헬스케어 분야에 젊은 인재들로 구성된 팹리스 스타트업들이 반도체펀드에 관심을 보여 산업성장에 대한 기대가 큰 상황이다.

협회는 반도체펀드 운용에 필요한 시장자문을 비롯해 투자기업이 필요로 하는 정보제공, 마케팅, 해외시장 진출 등을 지원해 기업 성장에 기여하고자 한다.

Q : 투자 프로세스는 어떻게 되나?

A : 지난해 12월 산기평과 MOU(기업성장 촉진 및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를 체결했다. 반도체 분야 정부R&D 수행기업 중 우수기업들을 발굴해 펀드 투자를 연계하고 기업성장을 지원해 산업생태계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기술경쟁력이 있으나 투자를 받지 못해 사업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반도체 분야 중소벤처기업에게 반도체펀드를 활용한 투자를 지원하고 있다.

최종 투자결정은 펀드운용사의 투자프로세스에 의해 이루어진다. 협회는 산기평과 함께 잠재력 높은 기업의 투자유치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한 기업성장을 지원하고 있다.

Q : 지난해 5개사에서 올해 7개사가 IR에 참여했다. 아직까지 외견상 크게 나아진 것 같진 않은데, 컨퍼런스 이후에도 상시적으로 IR이 이뤄지나?

A : IR행사는 기업발표 후 투자사 개별면담이 병행되기 때문에 행사 규모를 키우는 것보다 소규모 행사로 내실있게 진행하는 것이 투자 연계에 효율적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IR은 투자신청기업과 투자사들이 소통을 시작하는 단계이므로 최종 투자결정까지는 통상 수개월의 기간이 소요된다. 최종 투자집행까지 모든 과정은 비공개로 진행된다. 협회는 개별 투자미팅 주선 및 정보제공과 자문을 통해 최종 투자집행까지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협회는 IR 컨퍼런스의 규모를 키우는 것보다 실질적인 투자연계가 이루어 질 수 있도록 기업의 IR 역량을 키우고 투자자들에게는 반도체산업의 성장가능성을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다. 반도체기업 투자요청건은 수시로 자문, 지원하고 있다.

Q : 정부는 지난해부터 시스템반도체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시스템반도체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A : 시스템반도체는 전체 반도체시장의 약 60%에 달하는 거대시장이다. 전세계 반도체시장(2019 기준) 규모는 총 4284억불(시스템반도체 2421억불(57%), 메모리 1125억불(26%))에 이른다.

메모리가 '先생산·後판매'에 따른 수급불균형으로 급격한 가격변동이 있는 시장인데 비해 시스템반도체는 ‘주문형 생산방식’으로 인해 큰 가격변동이 없는 안정적인 구조를 갖추고 있다.

특히 시스템반도체는 인공지능,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차 등 4차 산업혁명 실현을 위한 핵심부품으로서 이종산업(자동차, 바이오, 로봇 등)과의 융합가속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분야다.

현재 우리나라의 메모리반도체 시장점유율은 60%에 달하는데 비해 시스템반도체는 3% 수준(디스플레이 구동칩, 이미지센서 등 일부 품목)에 불과하다.

이창한 부회장은 반도체 설계 분야 기술자립화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협상력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스템반도체 분야는 미국이 독보적인 기술 우위(시장점유율 70%)를 보이고 있다. 인텔, 브로드컴, 퀄컴 등 10위권 기업 가운데 6개를 갖고 있다. 유럽은 차량용반도체, 전력반도체 등 전문분야를 중심으로 시장점유율 10% 수준이다. 최근 중국이 거대 내수시장을 토대로 급성장해 시장점유율 6%를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의 시장점유율은 3.2%로 팹리스점유율은 1.7%에 불과하다. 시스템반도체 상위 50위권 기업 가운데 국내 기업은 삼성전자, 실리콘웍스가 전부다.

하지만 시스템반도체 분야는 고가 설계Tool, 시제품 제작, 설계자산(IP) 로얄티 등 막대한 자금이 필요해 영세한 팹리스 기업의 시장진입이 어렵고 고급 설계인력 부족 등이 문제로 지적된다. 정부는 '시스템반도체발전전략' 추진을 통해 우리나라가 명실상부한 종합반도체 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 중이다.

Q : 지난해부터 미중 무역갈등과 일본 수출규제가 소재부품장비에 영향을 끼치고 있고 여기에 올해 코로나19가 더해졌다. 시장 상황을 어떻게 보고 있나?

A : 지난해부터 이어진 일본수출규제, 미중 무역분쟁, 코로나19에 따른 반도체산업 글로벌 가치사슬(GVC) 변화로 인해 정부와 기업이 균형적인 산업생태계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에 비해 후발주자로 시장에 진입해 세계2위로 성장하는 놀라운 성과를 이뤘으나 소재·부품·장비는 해외기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최근 여러 사태로 인해 국내 산업생태계의 중요성이 부각되어 정부 뿐만 아니라 기업들이 생존을 걸고 노력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대기업에서도 국내 소·부·장 협력기업 양성에 높은 관심을 두고 있고 국내 소·부·장 기업은 핵심품목 연구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정부의 R&D지원 및 산업발전 정책수립은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제고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Q : 코로나19 상황에서 대외 소통에 어려움이 많을 것 같다. 대내외 불확실한 여건과 코로나 정국에서 협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A : 코로나19로 인해 기업들이 해외출장, 물류애로, 인력운영 등 애로가 있고 특히 중소 팹리스의 경우 해외 판로개척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협회는 회원사의 애로를 파악해 정부에 정책지원을 요청하는 등 민관 지속적인 소통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 항공편 축소에 따른 물류 애로를 정부에 건의해 긴급항공편을 운항하고 있고, 반도체 사업장 내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에 대비해 조기 대응 매뉴얼을 마련했다.

또 지난 16일부터 23일까지 ‘세계반도체생산국 민관합동회의(GAMS)’를 온라인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이번 회의는 6개국(한국, 일본, 미국, EU, 대만, 중국) 80여명의 관계자가 화상회의를 통해 각국 정부간 정책정보 공유, 반도체 통상이슈, 불법복제 방지 등 반도체산업에 관련된 다양한 주제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Q : 최근 영국 팹리스 기업 ARM을 미국의 엔비디아가 인수한다는 발표가 있었다. 반도체 핵심 설계를 미국이 독식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는데

A : ARM은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 자동차/가전 MCU(마이크로컨트롤러) 등의 칩 설계에 필요한 CPU코어(IP)를 라이센싱하는 칩리스 회사다. CPU코어 시장에서 독점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ARM의 고객 중립성, 오픈라이선스 모델이 담보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엔비디아가 오픈플랫폼 사업을 유지한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에 당장 우리 기업들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엔비디아 경쟁사 중심으로 독립적인 CPU코어를 사용할 가능성이 커지는 등 글로벌 산업재편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단, 삼성 파운드리 고객사인 엔비디아의 시장경쟁력 상승으로 인해 국내 파운드리 제조물량 확대, 메모리 협업 등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다만 중국을 비롯한 주요국 정부가 인수를 불허할 것이라는 전망이 크고, ARM 본사가 있는 영국에서도 반대여론이 크기 때문에 인수완료까지는 어려움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이창한 상근부회장은 취임기간 동안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 및 경영환경 개선을 통해 선순환 생태계에 기여할 뜻을 밝혔다.

Q : 지난 6월 대내외적으로 중요한 시기에 협회 부회장으로 취임했다. 취임 5개월 간 느낀 점도 많을 것 같다.

A : 작년 일본의 수출규제, 미중 무역분쟁이 격화, 현재 진행 중인 코로나19 등 시장의 불확실성 및 기업이 처한 어려움이 가중되는 와중에 협회 부회장으로 취임해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반도체산업은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큰 대표 산업이다. 무엇보다 메모리반도체와 시스템반도체 산업의 균형적인 발전이 필요하다고 본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주요국간 통상이슈와 코로나 대응 등 국가와 기업, 협회간 가교 역할을 충실히 해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잘 준비해 나갈 계획이다.

Q : 협회의 당면 과제는 무엇인가? 협회의 단기적, 장기적 계획이 궁금하다.

A : 취임 이후 여러 회원사를 직접 방문하고 업계 대표들을 만나본 결과 양질의 전문인력 양성이 시급하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반도체전공트랙사업, 폴리텍대학 융합캠퍼스 출범사업 등 정부 및 관계기관과 함께 다양한 인력양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의 니즈를 충족시키기에는 많이 부족하다.

중장기적으로는 반도체스쿨과 같은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램을 많이 만들어 인력을 배출하는 한편, 중고생들이 반도체산업에 많은 관심을 갖고 진로 및 취업할 수 있도록 반도체산업에 대한 홍보도 적극 추진해 나갈 계획이다.

또 기업의 경영환경을 개선하고 동반성장할 수 있는 선순환적인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노력하고자 한다. 기업의 기술개발, 대·중소기업간 상생협력도 중요하지만, 정부의 제도개선 및 중장기 지원정책이 함께 수반돼야 하기 때문이다.

Q : 정부와 협회 간 공동 대응방안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부회장님이 산업부, 과기부 등을 요직을 거치면서 쌓은 경험이 큰 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A : 협회는 지금까지도 정부와 긴밀한 협조 속에서 정책수립을 위한 기업의 목소리를 전달하고 기업의 애로사항을 해소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한 가지 예를 들면 지난 6월 시스템반도체 분야 창업 생태계 강화를 위해 ‘설계지원센터’를 개소했다. 이곳에서는 시스템반도체 분야 예비창업자, 창업초기 기업을 대상으로 사무공간, 시제품 제작지원 프로그램(MPW), EDA Tool을 제공하는 등 시스템반도체 분야 창업을 확산시키는 좋은 촉매제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 사업은 산업부 및 과기부 등 여러 부처의 관심과 협력이 필요한데 저의 경험이 이러한 사업추진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Q : 취임 기간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엇인가?

제 임기 동안 기본에 충실해 산업발전을 위해 산·학·연과 정부와의 가교역할을 성실히 수행함으로써 건전한 산업생태계 조성을 위해 노력하겠다. 기업들간의 상생협력과 동반성장이 반도체업계 고유 문화로 정착되도록 하고 싶다. 이 과정에서 협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깊게 고민하고, 할 수 있는 업무에 대해서는 모든 역량을 집중해 추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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