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성준 논설위원

갑오년이 저물고 있다. 매년 되풀이 되지만 이번 갑오년 역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였다. 그랬기에 두 갑자(甲子) 전에 한반도에서 일어났던 비극적 사건은 현재적 비극적 사건에 묻혀 인식조차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한 해가 저물고 있다.

두 갑자 전인 지난 1894년 갑오년 한반도에서는 청일전쟁이 일어났다. 조선을 집어삼키기 위한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승리한 일본군이 나라를 집어삼킬 듯하자 이를 막고자 일어섰던 동학농민군은 일본군의 총칼에 무참히 쓰러져 갔다. 그 결과는 이 땅의 민초들 삶을 뿌리 채 뒤바꿔버렸다. 물론 이것은 우리의 의지로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강요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노예와 같은 삶의 씨앗이 뿌려진 것은 명백한 것이었다. 이는 곧 이듬해인 을미년(1895년) 을미사변으로 이어졌고, 또다시 그 이듬해 아관파천을 거쳐 망국의 길을 재촉하는 형극의 길이 되고 말았다.

우리는 일본에게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고 힐난하곤 한다. 특히 2차 대전에 대한 반성이 없이 극우적 모습을 보이는 아베 정권에게 역사에서 제대로 된 교훈을 배우라고 시간이 날 때마다 주문하곤 한다. 아베 정권이 보이고 있는 모습은 식민지와 침략전쟁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과 피해를 보았던 민족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욕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냉엄한 국제관계는 결국 국력이 모든 것의 척도일 수밖에 없다. 힘이 없으면 제 목소리를 내기는 쉽지 않다. 물론 국력은 총과 칼이라는 무력만으로 설명되어지는 것은 아니다. 도덕적 권위도 중요하다. 그러나 원초적 힘은 결국 경제력에서 나온다. 경제력이 뒷받침 되지 않는 군사력은 결국 국민들만 기아선상에서 헤매게 만들 뿐이다. 아베 정권이 극우적 뻔뻔함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는 결국 일본이 갖는 경제력이 있다. 지금이야 중국에게 밀렸지만 그래도 일본은 아직 세계 3위의 경제대국이다. 이것이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세의 냉엄한 현주소다.

우리는 식민지를 겪은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대외원조에 나선 나라다. 인구 5000만 명이 넘는 국가로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가 넘는 국가이기도 하다. 소위 말하는 20-50 클럽에 세계 7번째로 가입했다. 정부도 지난 2012년 이를 대대적으로 홍보하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는 빠른 속도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는 이러한 결과물을 존경스런 눈으로 바라보는 나라로 둘러싸인 곳이 아니다. 

세계의 패권을 노리는 강대국이 둘러싸고 있는 곳이고 더군다나 분단이라는 족쇄까지 채워져 있지 않은가.

이러한 상황 속에서 우리는 이 갑오년을 어떻게 보냈는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우리가 지나온 역사에서 교훈을 얻으려 했는지 자신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지난 두 갑자 전 한반도에서 숨 가쁘게 지나간 역사의 흔적이 오늘날의 한반도에서 되풀이 되지 않으리라는 법은 없다. 그것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그만큼 우리의 깨어있는 자세가 중요한 것이다.

이번에 맞이하는 을미년에는 우리도 역사에서 교훈을 배우는 한 해가 되도록 해야만 한다. 올해는 을미사변 120주년, 을사늑약 110주년, 광복 70주년, 분단 70주년, 한일수교 50주년이 되는 해이기 때문이다. 현재적 삶은 중요하다. 지금 이 시간에 생존이 유지되지 못한다면 내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과거를 망각하는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오늘의 우리는 과거의 경험이 축적된 유전자를 물려받아 살고 있다.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면 과거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그것이 잔인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역사가 주는 교훈이다.

뜨거운 가슴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냉철한 이성을 잠시 내려놓아도 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생각은 냉철하되 가슴은 뜨겁게, 행동은 과감하게 하는 자세가 이 시대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다. 갑오년을 보내며, 또 을미년을 맞으며 맘속 깊이 젖어드는 단상(斷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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