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열도 고행 속에 온 몸으로 체득하며 서술한 ‘문화체험기’

최근 골방에서 써내려간 일본인의 의식구조 및 일본문화와 관련된 평범한 책이 아닌 일본 열도를 두 발로 직접 걷고 고행을 온 몸으로 체득하며 서술한 문화체험기 ‘일본은 원수인가 이웃인가’란 신간이 발간돼 화제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감동과 감격이 마음 깊은 곳에서 용솟음친다. 역시 피와 땀을 흘리며 발로 쓴 글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의 저자인 ‘인생 탐험가’ 허남정(前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전무이사) 박사는 61일 동안 일본 최남단 가고시마에서 홋카이도 삿포로에 이르기까지 일본 열도 4,600㎞를 종단했다. 스틱 두 개에 의지해 두 발로 실제 1,111km를 걸으면서 체험한 일본인 의식구조·문화체험 탐방기다.

저자 허 박사는 태극기와 일장기를 단 배낭을 메고 일본 48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44곳을 구석구석 누비면서 각계각층의 수많은 일본인을 만나 그들의 진솔한 목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과 애환을 온몸과 마음으로 체험했다.

이 같이 두 발로 일본열도 곳곳을 직접 누비며 평생 일본 전문가로 살며 쌓아온 지식과 통찰력으로 성찰하고 사유하며 이를 매일 저녁에 기록했다. 독자로서 이 책을 읽어 내려가다 보면 그의 고독하고 치열했던 문화체험 일정을 함께 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그의 탐험 한가운데로 빨려들어가게 된다.

허 박사의 일본 열도 종단기를 읽다보면 일본 각 지방의 풍물과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 문화·역사·의식구조 등의 심연을 간파할 수 있고, 일본인들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과 관습 등에 대해 이해의 깊이와 넓이를 확대할 수 있다.

저자는 “그동안 걸은 거리는 누적 1,108km였다. 공항 가는 리무진 버스에 오르기까지 시간이 있어 3km를 더 걸었다”며 “1,111km. 두 다리에 2개의 스틱을 짚고 일본열도를 종단했다는 의미를 스스로 부여했다”고 말한다.

그는 “당초 하루 평균 25km를 걷겠다고 작정했는데 목표에는 이르지 못했다. 그렇지만 평균 22km니 B+는 된다”며 스스로 만족해한다. 무엇보다도 끝까지 완주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한다.

허 박사는 “돌이켜보니 내 의지로 걸은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걸어 왔다는 느낌이다”며 “여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감사의 마음을 가슴에 새긴다”고 말한다.

저자 허남정 박사 <前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전무이사>

저자는 2018년 5월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 800km를 걸으며 얻은 깨달음과 그 길의 아름다움을 소개하기 위해 작년에 ‘산티아고 순례자들’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이 책에서 그는 “2019년 봄에 일본 열도를 종단하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막상 실행에 옮기려고 하자 주변에서는 최악의 한·일관계 속에서 혼자 걷는 여행은 위험하다며 만류했다. 하지만 2019년은 우리 민족 자주독립의 기개를 만방에 떨친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의미 있는 해다. 그런 뜻에서 향후 새로운 100년은 어떤 한·일관계를 만들어나가야 하는지 그 바람직한 방안을 찾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래서 제대로 준비도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능숙한 일본어 구사’라는 무기 하나만 달랑 들고 61일간의 일본열도 도보여행에 나섰다. 그는 고행 속의 도보여행을 통해 무엇이 한·일관계를 저해하는지 그 원인과 해결 방안을 성찰해 보고 바람직한 한·일관계의 그림도 그려보자고 결심했다.

손자병법에서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 즉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했다. 극일을 위해서는 먼저 상대인 일본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답은 현장에 있기에 현장에 가서 답을 찾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지금이야말로 일본의 문화와 일본인들의 생각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봤다. 언론이 전하는 간접 정보로는 일본을 제대로 알 수 없고 국내의 뿌리 깊은 반일정서로 일본에 대한 팩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고 그는 여겼다.

저자는 “한일 간에 놓인 현안들은 오래된 고질병이어서 쉽게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며 “문제를 보는 양국의 위정자 그리고 국민의 시각차가 너무 크다”고 지적한다. 특히 양국 국민 의식의 저변에는 뿌리 깊은 반일, 그리고 혐한감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는 각국의 역사와 민족감정과 연계되어 있어 작은 자극에도 불붙기 쉬운 감정이라고 그는 진단한다. 자칫 잘못 건드리면 문제가 꼬이고 커지기에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를 치닫고 국익이 크게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한·일 경제교류 분야에서 수십 년간 잔뼈가 굵은 필자는 경제 분야가 가장 큰 걱정이라고 말한다. 먹고 사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오래도록 곪아서 만성이 되어버린 질병을 고치는 것은 어려운 일이지만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잘 관리하며 사는 게 현명한 일일 지도 모른다고 여긴다.

저자는 “‘이사 갈 수도 없는’ 한일 두 나라, 향후 100년도 선린우호 관계는 지속되어야 한다”며 “그것이 상호이익이 되기 때문인데 그러려면 정치권·경제계·언론이 적극 나서서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 허 박사는 “편한 길을 택하면 경치는 언제나 같고, 어려운 길을 택하면 보이는 경치는 언제나 바뀐다”고 했다.

오늘날 지구촌 세계는 초연결사회이다. 그물망같이 촘촘히 얽혀있는 산업 생태계 속에서 한·일관계는 우리들의 먹고사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다. 또한 일본에는 주한미군의 후방기지가 있기에 일본은 우리의 안보에 불가결한 나라라는 것도 현실이다.

그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하지만 지난 역사에만 매달리는 민족에게도 미래가 없다”고 말한다. 조선시대 최고의 일본 전문가이자 외교관인 신숙주가 임종 시 성종 임금에게 “원컨대 일본과 화(和)를 잃어서는 안 됩니다”라고 한 유언을 상기시킨다.

저자는 “옛말에도 ‘세 닢 주고 집을 사고, 천 냥 주고 이웃을 산다’고 했듯이 500년 전이나 지금이나 100년 뒤의 한·일관계도 ‘성신교린(誠信交隣)’이 답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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