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액 28조원’으로 사상 최대지만 국내 상장에 그쳐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 사우디아람코가 5일 기업공개(IPO) 가격으로 32 리얄(약 9500 원)을 제시했다. 조달액은 256억 달러로 2014년 중국 알리바바(250억 달러)를 웃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영 석유회사 사우디아람코는 5일(현지시간), 기업공개(IPO) 공개가격을 32 리얄(약 9500 원)로 설정했다고 발표했다. 조달액은 256억 달러(약 28조 원)로 2014년 중국 알리바바(250억 달러)를 웃돌 전망이다. 시가 총액도 1조7000억 달러로 미국 애플(약 1조1000억 달러)을 제치고 세계 최대가 된다.

사우디 정부는 국내 개인 투자자에 우대책을 제시하고 인근 국가 펀드에 지원을 요청하는 등 IPO 성공에 필요한 정책을 총동원했지만 기업 가치를 ‘2조 달러 이상’이라고 주장해온 실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됐다.

원래는 뉴욕 등 해외 시장을 중심으로 발행 주식의 5%를 공개할 계획이었지만,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과대평가’라는 견해가 대두됐다. 이에 따라 거듭된 연기 끝에 규모를 축소해 1.5%를 국내에서만 공개했다.

아람코의 IPO가 사실상 흥행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과 관련,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3가지 오산이 있었다고 분석한다.

첫째는 사우디 정부 자체가 위험 요인으로 비쳐진 점이다. IPO 후에도 아람코 주식의 대부분을 보유하는 곳은 정부이며, 사우드 가문의 왕실이 기업 경영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소수 주주의 이익은 무시 될 가능성이 높다.

두 번째는 원유 가격의 저조다. 북해산 브렌트유의 선물가격은 2014년을 정점으로 40% 이상이나 하락했다. 미중 간 무역 전쟁이나 세계 경제 침체로 시세는 상승 기미를 안 보이고 4월의 최고치에 비해 15% 낮다.

세 번째는 보다 근본적인 원인으로, 지구온난화 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시장에서는 석유 산업의 앞날에 회의적인 시각이 확산되고 있는 점이다. 투자자는 환경·사회·지배 구조를 중시하는 ‘ESG 투자’에 기울어져 높은 배당으로 주주를 묶어두려는 구미의 석유자본(메이저)에 비해 해외 투자자에게 아람코 주식은 고평가된 것으로 비쳐졌다.

전문가들은 해저 유전 등 높은 비용의 석유 시설이 가까운 장래에 ‘좌초 자산’으로 돌아설 위험을 지적한다. 석유의 고갈이 아니라 예상보다 빠른 에너지 전환으로 ‘석유의 종말’이 도래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지난달 실시된 브라질 유전개발 입찰에서는 메이저 중 한 곳도 응찰하지 않아 관계자에게 충격을 줬다.

사우디는 석유의 앞날에 낙관적인 견해를 견지하고 있다. 압도적으로 저렴한 생산 비용을 강점으로 하는 아람코는 수요가 줄어 경쟁자들이 사라진 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해, 향후 20년은 수요 확대가 지속될 것으로 보는 아시아 지역의 정유소나 석유화학 분야에 거액의 자금을 투자한다. 투자자와의 인식 격차가 넓어질 뿐이다.

IPO는 무함마드 왕세자가 내세우는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국가 건설’의 상징이었다. 아람코를 경제다각화의 동력으로 규정해 주식 매각자금을 인프라 투자와 국민의 교육에 충당하려고 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해외 상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사우디 유력 왕족이나 재벌의 일부는 반 강제적으로 주식 매입을 요구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아람코 회장에 최측근인 야시르 루마이얀 씨를 기용하는 등 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려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가 해외 상장 연기로 투자자의 시선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면, 강권 통치에 박차를 가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아람코 IPO를 계기로 사우디의 경제가 개방될 것이라는 기대에 역행하는 움직임이 진행될 우려도 있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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