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춘(본지 회장, (주)에스엔이노베이션 대표이사, 전 KAIST 위촉 연구원, 전 삼성전자 기술고문)

스위스 세계경제포럼의 창시자이자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 교수가 21세기에 접어들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디지털 기술 혁신과 그에 따른 광범위한 응용 기술의 약진을 두고 이 시대를 ‘4차 산업혁명 시대’ 란 용어로 선언하면서 요즘 기술산업 뿐만 아니라 경제. 정치. 사회 거의 전 분야에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국민적 논의와 담론이 뜨겁다.

특히 아시아권 국가들과 우리나라는 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주인공이 되고 리더가 되기 위해 언론에서는 거의 매일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도래를 알리고 정부, 학계, 산업계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찾고 논하는데 열기가 뜨겁다.

그러나 갑자기 대두된 4차 산업혁명 시대라는 압도적이고 거창한 화두 앞에 요즘 사실 전문가들조차도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고 무엇을 지향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지경이다. 그러니 일반 국민들은 어떨까? 주변에 대학 교육까지 받은 일반인이나 각급 기관장 급 인사들도 대다수 한마디로 잘 정리가 안 된다고 한다.   

정확히 말하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개념과 말의 뜻을 모르는 게 아니라 우리가 이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혁명 주체가 되자는 뜻인지, 아니면 기회를 창의적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리더가 되자는 것인지, 또는 이 새로운 산업혁명 시대에 잘 적응하고 따라가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자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사실 4차 산업혁명 시대란 표현과 선언은 너무 이른 것일 수 있다. 인류는 그동안 발명과 기술혁신을 통해 문명의 대약진과 새로운 전기를 마련해 왔고 그 때마다 문명의 역사가들이 훗날 산업 혁명이었음을 정의하였다.

또한 20세기 반도체 발명으로 촉발된 3차 산업혁명 이후 기술의 진화와 발전은 비약적으로 가속되어 왔고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과거 100년의 변화가 10년 만에 이루어지는 상황을 모두가 느끼는 시대에 살고 있다. 즉, 인류의 끊임없는 기술혁신과 변화는 예견되어 왔던 것이고 3차 산업혁명 이후 오늘날과 같은 새로운 인공지능과 자율자동차, 빅데이터 기술 등도 3차 산업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으므로 2010년 이후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이러한 기술혁신들이 4차 산업혁명이었는지 무엇이었는지는 좀 더 훗날 정의가 내려질 것이다.

영국의 증기기관 발명이 1차 산업혁명 시대를 열었고 미국의 전기발명이 2차 산업혁명시대를 열었고 역시 미국에서 반도체 발명도 이뤄져 20세기 거의 모든 전자. 통신. 컴퓨터 기술을 가능하게 한 3차 산업혁명 시대를 이어 오고 있다.

우리에게 갑자기 대두된 것 같은 4차 산업혁명 시대란 무엇인가?

소위 4차 산업 혁명시대의 키워드로 인공지능, 로봇공학, 사물인터넷, 자율주행자동차, 3D 프린팅, 나노기술, 생명공학, 재료공학, 에너지저장기술, 퀀텀 컴퓨팅, 빅 데이터 처리기술, 블록체인기술과 가상화폐 등을 일컫는다.

이러한 모든 기술들이 출현하고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 된 원천은 반도체의 발명으로 촉발된 3차 산업혁명의 연장선에서 재능 있는 엔지니어들의 창의력과 역동적인 산업자본이 결합한 탓이다.

하지만 2000년대에 바로 실현되고 보편화될 것 같았던 홈오토메이션이나 공장자동화 등은 아직 우리 현실에는 일반화되어 있지 않다. 이런 현실 상황에서 스마트홈을 이야기하고 스마트공장을 이야기 한다. 무엇이 크게 다른지 잘 모른다. 이게 4차 산업 혁명시대의 한 키워드라고 하니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우리는 1960년대 반도체가 발명된 3차 산업혁명의 여명기에 있어서 그 3차 산업혁명시대를 부르짖고 아우성치지 않았어도 6.25전쟁을 치른 폐허국가였지만 지난 50년간 경제 기적을 이루었다.

우리는 그동안 손재주와 부지런함 그리고 높은 교육열을 밑천으로 가발과 같은 경공업 제품부터 시작해서 1970년대 라디오를 생산하고 TV 등 가전제품을 그리고 스마트폰과 반도체, 조선, 자동차 등을 모방 생산하다가 자체개발, 생산하기에 이르렀고 아주 빠르게 성장하여 올해는 8대 수출국으로 부상할 만큼 국제 경쟁력도 갖추었다.

그러나 우리는 18세기 이후 한번도 인류의 기술 문명의 한 획을 그을 만한 혁명적인 발명을 했거나 산업혁명의 주체가 되어 국제적인 기술 주도국의 지위를 갖고 산업을 이끌어 온 역사가 없다.

다만 전쟁의 폐허를 딛고 강력한 정부 주도의 정책과 지원에 힘입은 대기업 중심으로 3차 산업혁명의 관련 기술과 제품을 모방하거나 개량하여 세계 시장에 내다 파는 수출 중심 국가로 성장하여 지금까지 기적 같은 경제 성장을 해 온 것이 전부다.

이런 상황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어떻게 맞이하는 게 가장 바람직할 것인가 올바르고 솔직한 고민을 해보아야 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그동안 권위주의적 국가 주도의 경제 성장 정책과 규제 아래 모방적인 기술과 제품 개발에는 익숙하지만 산업정책을 정하는 정부와 공무원, 규제를 생산하고 집행하는 산하기관 그리고 기업 모두 소위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방적 혁신과 아이디어를 담아내고 비즈니스로 실현할 수 있는 역량과 시스템이 잘 작동하지 않게 되어 있다.

실험적이고 혁신적인 신산업의 생태계를 어떻게 갖출 것인가에 대한 중장기 로드맵과 아이디어가 없고 경직된 제도와 규제 아래 현란한 목표와 구호만 앞서 서로 충돌하고 갈등하고 있다. 그러니 잘 돌아 가겠는가? 가다 보면 막히는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니다.

멋진 아이디어와 기술만 있으면 원스톱 지원으로 사업 성공을 보장한다고 창업을 독려하지만 사무실 얻고 집기와 장비 좀 구입하고 나면 직원 수개월 봉급도 주기 힘든 겨우 수천만원의 창업비로 창업하라 하고 그나마 어렵게 0.5~2억 정도의 정부 개발과제를 하나 따서 1-2년 제품 개발에만 몰두하여 제품 개발하고 나면 정작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생산 및 마케팅 사업비 조달에 막혀 좌초하거나 어렵사리 창투사 자금 투자받더라도 경영권 간섭과 불공정 투자계약으로 결국 창업을 성공적인 성장 과정까지 지키기는 하늘에 별 따기만큼 어렵다.

또한 멋진 아이디어와 사업성을 평가한다는 전문가의 자질과 방법도 문제다. 한번 창업과 실패를 경험한 사람이나 이런 것을 옆에서 지켜보는 젊은이들에게 기업가 정신을 불 살라 창업에 뛰어들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대박 성공은 아니더라도 한국에서 창업하면 직원들과 함께 먹고 사는 것 정도까지는 대부분 성공하는 창업 풍토와 기업천국(Entrepreneur Paradise)을 향한 한국적 창업과 성장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 의지와 예산만 갖고서는 안되고 산업계와 기업지원 유관 기관들의 혁신과 제도 개선, 인적 쇄신이 뒤따라야 한다.  

한 예를 들어 정부 산하기관에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과 고효율기기를 개발 촉진하고 보급을 장려하며 감독하는 한국에너지공단이라는 기관이 있다. 이 공단 홈페이지에 들어가 고효율기기 지정과 등급을 받을 수 있는 고효율기기로 지정해 놓고 있는 품목 중에 모터(전동기)를 찾아보면 20여년 전부터 한번도 안 바뀌고 아직도 “0.75kW 이하 단상 유도 전동기”라고 되어 있다.

이 말은 소형 단상 유도 전동기만 고효율 기기로 지정 받을 수 있고 다른 모터는 안 된다는 뜻인데 이게 말이 되는가 말이다.

전기 모터는 발전소 전기의 50~60%를 소비하기 때문에 이미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벌써 15년 전부터 특별 고효율 향상 대상 품목으로 지정하여 효율이 나쁜 유도 전동기는 이미 퇴출시켜가는 추세이다.

즉 조명에 비한다면 백열전구에 해당하는 것이다. 따라서 유도전동기보다 운전 효율이 매우 뛰어난 전자 제어식으로 가변속이 가능한 무정류자 모터(BLDC Motor)나 스위치드 릴럭턴스 모터(SRM) 등을 새로운 차세대 스마트 모터라고 지정하고 일정 효율 이상이면 에너지 스타 마크를 부여하고 이러한 모터 개발, 생산과 보급을 특별히 장려하고 있다. 유도전동기는 점차 퇴출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에너지공단에서는 “단상 유동 전동기”를 여태 고효율기기로 지정해 놓고 있는 이유와 배경이 무엇이고 더 효율적이고 혁신적인 모터 개발과 보급을 가로 막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특히 전기모터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전기 자동차와 로봇, 차세대 직류 주택의 등장에 있어 핵심 부품이고 에너지 운전효율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동력 부하장치이다.

이와 같이 곳곳에 혁신이 필요하지만 도대체 잘 바뀌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젊은이들의 독창적인 사업 아이디어와 기술 혁신과 제품 개발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아이디어와 창의력을 피어낼 제대로 된 민 관 정책과 역동적으로 펼쳐나갈 사업 생태계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세돌을 이겨낸 인공지능 알파고의 알고리즘을 발명했는가? 인공지능은 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인공 신경망의 연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우리나라 과학자와 엔지니어들도 이 분야를 공부하고 연구한 사람들이 있지만 딥 런닝이라는 비약적인 지평을 열지 못하고 이미 혁신적인 알파고와 같은 인공지능의 알고리즘을 개발한 혁명 주체에서 밀려났다.

자율주행자동차를 우리가 세계시장에 내 놓을 수 있을까? 빅데이터는? 블록체인 기술은? 우버와 같은 공유서비스 사업모델은? 우리나라에 이런 기술을 발명하고 선도한 엔지니어가 창업했다면 세계적인 스타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아니 그 기업이 과연 살아남아 있을까?

아마도 우리가 4차 산업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이거나 망상이 될 것이다. 이미 4차 혁명을 촉발시킨 핵심 기술과 원천 아이디어는 미국이나 영국에서 갖고 있다. 그리고 그런 기술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국가들은 혁신적인 기술이 혁신적인 사업으로 정착하고 발전할 수 있는 관민학계의 선진 사업화시스템과 정책, 제도, 자금 지원생태계가 잘 발달되어 있다.

우리는 어찌할 것인가. 일단 우리는 우리의 독창성과 경험과 장점을 잘 살리도록 장려하고 그에 맞는 선진 원천기술과 혁신적인 비즈니스 모델들을 학습하고 응용하여 생존과 함께 더 진보된 기술과 제품 또는 서비스를 개발하여 미래 먹거리 창출에 충실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정부와 기존 대기업들도 이런 점에 착안하여 거창한 4차 산업 혁명시대가 도래했다고 큰 장막만 펼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과 젊은이들이 잘 할 수 있는 분야와 소질을 발휘할 수 있는 각론 기술과 산업을 찾아 육성, 장려하고 통 큰 지원과 투자 생태계를 조성하는데 정책을 집중하여 기발한 창업가나 신생기업이 창업에 많이 도전하여 성공하고 국제적인 스타 기업들이 탄생하도록 진정한 범국가적 직무혁신과 제도개선을 해야 할 것이다.

즉 정부 산하 정책 기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인식과 제도를 먼저 변화시키고 세계 시장을 리드할 수 있고 창의적인 가치 창출이 가능한 분야를 잘 선별하여 집중과 선택을 잘 해서 우리만의 경쟁력 확보와 재도약의 동력에 불을 지필 수 있는 심지가 어디에 있는지 성찰해야 한다. 지난 50년간 모방과 정부규제로 성장해온 구습이 남아 있는 한 4차 산업혁명 시대의 경제 성장을 지속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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