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한 준비 없는 탈핵 논의는 국익을 해칠 수 있다

▲ 폐로가 결정된 독일 그론데 원전 전경.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난해 6월말 전 세계적으로 원전 63기가 건설 중이고, 그 절반에 가까운 43%가 중국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현재 전 세계 가동 원전 수는 431기이다. 그중 미국이 99기를 가동 중이고 프랑스가 58기, 중국과 러시아가 똑같이 35기를 가동 중이다. 우리나라는 24기를 가동하고 있으며, 인도가 22기를 운영하고 있다.

특히 프랑스는 원자력 의존도가 78%나 되는 세계 제1위의 원전국가이다. 원자력 덕분에 프랑스의 에너지 자립율은 1973년 22.7%에서 현재 50% 수준에 달한다. 전력 수출도 세계 제1위다. 원자력이 가장 대외경쟁력 있는 프랑스의 수출자원인 것이다. 또한 원전으로 말미암아 프랑스는 OECD 30개국 가운데서 온실가스 배출에 관련하여서도 큰 혜택을 누리고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여왔던 성공적인 수단도 원자력이었음을 결코 감추지 않고 있다. 나아가서 프랑스는 국가별 에너지원의 선택이 각국의 특성과 역사적 과정에 의존하고 있음을 서슴없이 주장하고 있다.

독일은 2014년 한 해에만 1만4777GWh의 에너지를 수입할 수 있는 프랑스를 전력그리드망의 이웃으로 두고 있다. 독일이 미래를 위한 신재생에너지산업을 치밀하게 육성하면서 큰 부담 없이, 또 별 주저 없이 탈핵을 추진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반면 전력그리드 망에 관한 한 우리나라는 고립무원(孤立無援)한 절해고도(絶海孤島) 외딴 섬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현실에서 탈원전을 추진하겠다는 정부가 올 들어서만 기업들에 전력 사용량을 줄이도록 하는 ‘급전(急電) 지시’를 세 번(7월12일, 7월21일, 8월7일)이나 내렸다.

나 홀로만 탈원전으로는 안전 보장 못해

우리가 타산지석 삼아 반면교사 해야 하는 독일의 탈핵선언이 쉽사리 가능했던 이유와 근거는 에너지산업 구조를 변화시키기 위하여 상당기간 오랜 준비를 하여 왔고, 이를 토대로 메르켈 총리 정부가 정치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여 과감하게 탈핵을 실현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특히 독일정부가 집중적으로 육성했던 재생에너지 산업정책의 성공이 탈핵선언의 물리적 토대가 되었음을 각별히 유의해야 한다.

탈핵선언부터 하고 나서 재생에너지산업(2016년 4.8%→2030년 20%)을 육성하겠다는 것이 우리의 정책이다. 이에 반해 독일은 재생에너지산업을 일정궤도(2011년 19.2%→2030년 50%)에 진입시키면서 차근차근 탈핵을 주도면밀하게 추진해왔다.

우리나라 탈핵?환경론자들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탈핵을 주장해 왔다. 하지만 일본 후쿠시마 사고에서 본 바와 같이, 우리만 탈원전 했다 해서 대한민국 삼천리 금수강산이 안전해지는 것은 결코 아니다. 바로 우리 이웃도 모두 다 함께 탈핵 탈원전 해야만 비로소 국가의 안위와 민족의 안녕을 더불어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이다.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서균렬 교수는 “(만에 하나라도) 중국에 지어질 100기 넘는 원전에서 사고 나면 한나절이면 한반도를 덮칠 텐 데 사드 때문에 눈치 보는 (우리)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보고도 탈원전 하라고 하려나”(본지 7월26일자 A10면)라고 매우 심각하고 의미심장하게 되묻고 있다.

옳은 말이다. 그런 불상사 혹은 대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우리는 중국을 설득하여 탈핵시킬 합당한 논리와 중국을 압박할 당당한 논거를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일이 터지고 난 다음에 주장할 논리를 개발하고 들이댈 논거를 찾아 헤매는 어릿한 자세가 국민을, 그리고 국가를, 나아가서 민족을 책임지는 고위공직의 자세가 되어서는 안 된다. 더구나 국정 최고책임자인 국가원수를 보필하고 보좌하는 참모진들의 자세도 아니다.

현재 중국은 원전 27기를 건설하는 중이다. 더구나 중국이 앞으로 건설하려는 원전 중 4기는 백두산에서 겨우 100km 정도 떨어져 한반도와 최인접해 있다. 특히 황해 건너 바로 코앞인 산동반도 가장 동쪽 해안지역에 원전 33기의 건설을 준비하고 있다. 게다가 중국은 2030년까지 200여 기, 2050년까지 400여 기의 원전을 더 지을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더구나 반핵·환경론자들의 두려움에 떠는 시각으로 본다면, 우리는 중국과 일본의 원전으로 불타는 화로더미 불가마, 즉 ‘핵의 고리’ 속에 둘러싸여 빈틈 하나 없이 갇혀 있는 꼴이다.

그렇다면, 왜 어찌하여 반핵·환경단체들은 국내 원전문제만 집중적으로 거론할 뿐, 중국의 원전 가동과 그 어마어마한 새로운 건설에 대하여는 입을 다물고 있는가? 만약 중국에서 사고가 난다면 그 방사능 구름이 우리 한반도를 결코 넘보지 못할 것이라고 굳게 믿는가? 왜 그들은 이에 대하여는 아무 말도 없어야 하는 것인가?

우리가 제대로 탈원전 하려면, 지근거리 이웃인 중국더러도 ‘우리와 함께 다같이’ 탈원전 또는 탈핵할 것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 홀로서만 탈핵해서는 탈핵의 의미가 전혀 없거나 그 의미가 반감된다는 뜻이다. 지정학적 안목으로 보아, 설사 북한은 논외로 친다 하더라도, 이 마당에 우리 홀로서만 탈원전 탈핵해서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왜 집안에서만 ‘방안퉁소’ 노릇만 하는가? 왜 바로 이웃에서 올 수 있는 더 큰 위험에 대하여는 아무 소리도 못하는가? 다시 한 번 말하거니와, 우리 혼자서만 탈원전 탈핵해서는 전혀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재가동에 들어간 일본에게도 다시금 ‘함께’ 탈원전 탈핵하자고 설득해서 이 좁디좁은 지구상에 공존하는 인류로서 다 같이 ‘함께’ 잘 살자고 권면(勸勉)해야 하지 않겠는가?

중국은 우리더러 ‘사드부터 없애라’고 요구한다. 이를 역지사지(易地思之) 해보자. 우리가 중국더러 ‘원유공급을 중단해서라도, 북핵만 없애라. 그러면 당장 미국에 사드철수를 요구 하겠다. 사드는 북핵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스위스 탈원전 내용 정확히 알아야

다섯 번의 국민투표로 탈원전을 이루었다는 스위스만 해도 그렇다. 1984년부터 네 번이나 국민투표에 원자로 중단이 안건으로 올라왔으나 모두 부결됐던 스위스는, 지난해 11월 녹색당이 주도해 45년 수명을 다한 원전에 대한 폐쇄안을 다시 국민투표에 부쳤다.

하지만 이 안이 통과될 경우 원자로 5개 가운데 3개를 당장 중단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이 되자 스위스 정부가 앞장서서 “너무 급진적”이라고 반대에 나서 부결시켰다. 스위스 정부는 이에 대한 대안으로 ‘에너지 전략 2050’이라는 에너지 수급 법안을 마련해 또 다시 국민투표를 실시하였다. 이 법안은 당장 원전을 폐쇄하는 것이 아니라 원전이 수명을 다하면 새로 추가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 결과를 놓고 우리는 스위스가 탈원전을 이뤘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스위스의 모든 핵발전소는 최종 폐기연한이 정해져 있지 않아 언제 문을 닫을지 알 수가 없다.

또한 법안 통과 전 스위스 환경장관은 원전폐기 법안이 통과되면 4인 가구당 1년에 40프랑(약 4만7000원)의 세금을 더 내야한다고 보고했지만, 극우성향의 국민당(SVP)은 연간 3200스위스프랑(약 377만 원)이나 추가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측 사이에 80배의 차이가 났다. 이에 대해 스위스 정부는 “각 발전소마다 경제, 사회, 안전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이 모두를 고려해 폐쇄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여지를 남겼다. 이를 두고 스위스 정부의 탈원전 꼼수라고 매도할 수 있는가? 오히려 이야말로 스위스인들의 지혜로움이라 평가하는 게 타당할 것이다.

장인순 박사(전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는 “위험도로 따지면 원전이 아니라 핵무기가 더하다. 북한 핵실험에는 침묵하는 사람들이 과연 반 원전을 외칠 자격이 있는가”라고 되물으며, “문명을 위협하는 최악의 위험은 바로 ‘비이성적 두려움’”이라는 클로드 알레그르의 말을 들어 비판했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지나친 원자력 공포는 많은 사람들이 원자력에 관한 전문지식 없이 비과학적으로 모든 것을 확대 해석하는, 막연한 ‘비이성적 두려움’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말을 귀담아 듣고 몇 번이고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세계 첨단을 가는 우리의 원전기술을 더욱 계발(啓發)하여, 우선 우리 원전부터 완벽하게 관리를 함과 동시에, 해외시장에 원전기술의 수출도 병행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재생에너지 개발과 새로운 에너지원을 발굴함으로써 원전의 대안을 마련해가면서, 원전을 폐쇄해도 될 것이 아니겠는가? 무엇이 급하여 그리도 서두르는가? 오늘만 살고 내일 당장 죽으려는가?

주변국과 함께 탈핵 안 하면 의미 퇴색

‘7·6 베를린 구상’과 관련해 북한은 우리 대통령을 민족의 운명을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숙련된 ‘운전자’로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그러기는커녕, 남쪽은 대화상대가 전혀 아니라며 자기보다 ‘키 큰 어른’과만 이야기하겠다고 생떼 쓰는 ‘키 작은 어린애’마냥 봉남통미(封南通美)에 집착하고 있다. 게다가 한술 더 떠서, 우리 대통령의 선언에 대하여 “잠꼬대 같은 궤변” “철면피하고 누추하다”는 막말에 “맥도 모르고 침통 빼드는 얼치기 의생”(북한 노동신문)이라는 저급하기 짝이 없는 상스러운 언사를 서슴없이 내뱉고 있다.

어떻든 북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오히려 상식의 허(虛)를 찌르는 음험한(?) 습성의 행태도 서슴치 않고 있다. 우리 대통령은 5년 임기의 단기 지도자일 뿐이지만, 저쪽은 영구집권하는 절대군주보다도 더 막강한 세습 지도자이다. 우리처럼 좌고우면(左顧右眄)하며 여론의 눈치를 살필 필요가 전혀 없다. 그러므로 대화의 문은 활짝 열어놓되, 대화를 구걸하거나, 하물며 애걸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이다.

민족을 공멸시킬 수 있는 핵무기를 추구하는 북은 그대로 놓아둔 채, 우리만 탈원전 탈핵해서야 무슨 의미가 있고 영원한 민족발전을 위하여 무슨 큰 가치가 있겠는가?

원전기술 수출도 그렇다. 원전중단으로 우리가 수출을 멈추면, 그동안 우리가 쌓아온 해외원전시장은 중국과 러시아의 독차지가 될 것이다. 두 나라는 손도 안대고 코 푸는 격이다. 우리가 안에서 원전을 포기해 버린다면, 밖에서 누가 대한민국이 버린 원전기술을 신뢰하겠는가?

탈핵을 국가 만년대계로 최종 결정함에 있어서, 독일의 탈핵 역사가 가르치는 바를 귀담아 듣고, 이를 살아있는 귀감으로 삼아야 한다. 기나긴 독일의 탈핵 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은 채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간다면, 앞으로 얼마동안이나 우리가 지금처럼 비교적 여유로운 경제적 느긋함을 누릴 수 있을지 심히 우려된다.

김남국 본지 고문

키워드

#N
저작권자 © 산경e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